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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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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배순 정려비 배순은 조선 중기 때의 사람으로 1615년(광해군 7)에 충신과 효자의 면모를 인정받아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워 표창 받았다. 이를 정려(旌閭)라고 하는데, 정려비는 1649년(인조 27) 그의 손자 배종이 세웠다. 지금의 정려비는 1755년(영조 31) 그의 7대 외손인 임만유가 ‘충신백성(忠臣百姓)’이라는 말을 넣..
[스크랩] 이보흠(李甫欽) : 忠莊公1397년(태조6,丁丑)~1457년(세조3,丁丑), 이력(履歷) 이보흠(李甫欽) : 1397년(태조6,丁丑)~1457년(세조3,丁丑), 영천이씨.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 정조때 시호는 충장(忠莊), 휘 석지(釋之) 할아버지의 다섯째 아들인 부사직(副司直) 휘 현실(玄實) 할아버지의 아들이시며, 어려서 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학문을 좋아 하..
[스크랩] 단종복위운동과 금성단 우리고장에는 화려한 문화유산과 조상의 빛난 얼이 담겨져 있으나, 면면히 흘러간 역사속에는 잊지 못할 슬프고도 비참한 사연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나, 특히 단종(端宗)의 복위를 위하여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무참히 죽어간 금성대군(錦城大君)과 부사 이보흠(府使 李甫欽), 수 많은 순흥 사람일..
[스크랩] 두껍바위의 전설 두껍바위~~~ 지금 영주시 휴천동(속칭 광승) 뒷산에는 높이 10m, 직경 7m가량되는 뚜껍바위가 있다. 뚜껍바위는 옛날부터 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으며, 외아들의 명을 길게 해달라는 뜻에서 이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이 많다. 이조 초기에 이 마을에 송석이라는 바보같은 아이가 있었다. 이..
[스크랩] 부석사 대나무 부석사 대나무 서기 650년경 신라의 의상조사는 불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지금의 상해로 건너가, 당시의 당나라 서울 장안에 이르러 불도가 높은 도승 지엄대사를 지상사에서 뵙게 되었다. 대사는 전날 밤 꿈에 해동에 큰 나무가 나서 가지와 잎이 번성하여 중국을 덮고, 그 위..
[스크랩] 의상조사의 지팡이 의상조사의 지팡이 의상조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지팡이가 있었는데 조사가 열반하실 때 예언하기를 이 지팡이를 비와 이슬에 맞지 않는 곳에 꽂아라. 지팡이에 잎이 나고 꽃이 피면 우리 나라의 국운이 흥왕할 것이다" 고 하매 문도들이 조사당 축대에 꽂았더니 과연 음력 4월..
[스크랩] 순흥 초군청 순흥 초군청 고려시대에는 국방경비를 위하여 주(州), 현(縣)에 초군(樵軍)을 두었다. 또 나무꾼을 초군(樵軍)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순흥에 있었던 초군(樵軍)이라 하는 것은 농사군을 뜻하는 것이다. 순흥은 예로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의 요충지대요, 역사적 사건과 명승고적이 많은 지방이며 ..
[스크랩] 두레골 성황당 두레골 성황당 두레골 성황당의 유래는 보기 드문 전설을 가지고 있다. 원래 현재와 같은 성황당이 서기 전에는 순흥부의 수호신으로 믿어 온 산신령만을 모시는 산신각이 먼 옛날부터 있어 왔었다. 그러다가 주신인 금성대군의 신위를 모시게 되어 오늘날까지 순흥 사람들의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