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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 관광

[스크랩] 부석사 대나무

부석사 대나무

서기 650년경 신라의 의상조사는 불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지금의 상해로 건너가, 당시의 당나라 서울 장안에 이르러 불도가 높은 도승 지엄대사를 지상사에서 뵙게 되었다.
대사는 전날 밤 꿈에 해동에 큰 나무가 나서 가지와 잎이 번성하여 중국을 덮고,
그 위에 봉의 집이 있었다.
이상히 여겨 올라가 보니 용왕의 뇌 속에서 나오는 한 개의 귀한 구슬이 있어 그 밝은 빛이 멀리까지 비치었다.

꿈을 깬 후, 놀랍고 이상하여 집 안과 방을 깨끗이 청소를 하고,
기다리는데 의상이 왔었다.
그리하여 대사는 특별한 예의로 맞이하였다.
의상은 수년간 화엄종의 공부를 열심히 하여 도를 깨달은 다음 신라로 돌아왔 다.
이 때에 관음보살의 진신이 해변의 굴 속에 산다는 말을 듣고,
지금의 낙산사 의상대 앞에 이르러 재계 7 일만에 앉을 자리를 만들어 물 위에 띄우고 앉으니,
용왕이 굴 속으로 인도하였다.
공중을 향하여 참례를 하니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내 주었다.
또 동해의 용이 여의주 한 알을 의상조사에게 바쳤다.
다시 재계 7 일만에 들어가 관음보살의 용모를 보았다.
진신이 일러 말하기를 내가 앉은 자리 위의 산 꼭대기에 쌍죽(雙竹)이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말을 듣고 671년 문무왕 11년 그 곳에 절을 지으니 오늘의 낙산사이다.

화엄종의 총본산이 될만한 큰 절을 짓기 위해서
오늘의 경북 영주시 순흥면 국망봉 밑에 있는 초암사 자리에 와서 풀로 암자를 짓고,
사방으로 절터를 찾다가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 아래에서 명지를 발견하였다.
아마 옛날 당나라 지엄선사가 꿈에 봉을 보고,
다음날 조사를 만난 것을 생각하여 부석사 절터를 잡은 것이고(667년 문무왕16년),
그 중허리에, 신라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지을 때 관음보살의 지시에 따라 쌍죽을 보고 지었으니,
이곳에 대나무를 많이 심게 되었다.
속설에 봉황산의 봉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살기 때문에 천 수년이 지나도 절이 전하며,
앞으로 영원히 이 절이 왕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석사에 의상조사가 밤에 주무시고,
아침에 낙산사에 가시어 아침식사를 드셨다고 하니 조사의 도술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다.
봉황산 꼭대기에서 낙산사까지의 직선거리는 70여리 밖에 되지 않으나 산이 첩첩으로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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