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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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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석사 대나무 부석사 대나무 서기 650년경 신라의 의상조사는 불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지금의 상해로 건너가, 당시의 당나라 서울 장안에 이르러 불도가 높은 도승 지엄대사를 지상사에서 뵙게 되었다. 대사는 전날 밤 꿈에 해동에 큰 나무가 나서 가지와 잎이 번성하여 중국을 덮고, 그 위..
[스크랩] 의상조사의 지팡이 의상조사의 지팡이 의상조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지팡이가 있었는데 조사가 열반하실 때 예언하기를 이 지팡이를 비와 이슬에 맞지 않는 곳에 꽂아라. 지팡이에 잎이 나고 꽃이 피면 우리 나라의 국운이 흥왕할 것이다" 고 하매 문도들이 조사당 축대에 꽂았더니 과연 음력 4월..
[스크랩] 순흥 초군청 순흥 초군청 고려시대에는 국방경비를 위하여 주(州), 현(縣)에 초군(樵軍)을 두었다. 또 나무꾼을 초군(樵軍)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순흥에 있었던 초군(樵軍)이라 하는 것은 농사군을 뜻하는 것이다. 순흥은 예로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의 요충지대요, 역사적 사건과 명승고적이 많은 지방이며 ..
[스크랩] 두레골 성황당 두레골 성황당 두레골 성황당의 유래는 보기 드문 전설을 가지고 있다. 원래 현재와 같은 성황당이 서기 전에는 순흥부의 수호신으로 믿어 온 산신령만을 모시는 산신각이 먼 옛날부터 있어 왔었다. 그러다가 주신인 금성대군의 신위를 모시게 되어 오늘날까지 순흥 사람들의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굳..
[스크랩] 조개섬 마을 조개섬 마을 조개섬 마을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70여호의 집들이 흡사 조개모양을 하고 있다. 박진사집은 조개가 입을 여닫을 때 붙어 있는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이름난 부자로 알려진 박진사는 재산이 많은 데 비해 집이 너무 작은 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한 나머..
[스크랩] 순흥 봉서루 순흥 봉서루 옛날에 순흥은 한산한 고을이었다. 하루는 지리에 능통한 이인이 지나다가 지형은 번성할 곳이나 앞이 너무 허해서 순흥의 진산인 비봉산의 봉이 남쪽으로 날아가 이곳이 흥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것을 듣고 있던 고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남쪽에 큰 누각을 짖고, 오동..
[스크랩] 순흥과 압각수 순흥과 압각수 순흥에서 부석쪽으로 1km정도 되는 길 오른편에 유서 깊은 소수서원이 있고, 조금 지나면 죽계천을 건너는 다리 제월교가 있는데 이것이 옛 순흥의 청다리이다. 이 청다리 못 미쳐 왼편 100m되는 곳에 금성대군의 위패를 봉안한 금성단이 있다. 금성단 뒤 서쪽에 숱한 사연을 간직한 압각..
[스크랩] 소수서원 경자바위 소수서원 경자바위 영주시 순흥면 사현정(四賢井) 위쪽에 백운동(白雲洞)이 있고, 이 동리에 유명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으니 이 서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액(賜額)받은 서원이다. 이 서원 앞에 죽계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그 천변(川邊)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며 그 밑에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