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비의 고장 영주/영주 관광

(79)
[스크랩]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 국보 17호 경북 영주시 통일신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
[스크랩] 가장 아름다우면서 오래된 목조건축물... 무량수전 국보 18호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무량수전 국보 18호 경북 영주시 고려 중기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
[스크랩] 전통 한옥마을 수도리.... (무섬마을) ↑ 무섬마을 앞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 1989년 수도교라는 돌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무섬마을은 전형적인 '물돌이마을'이다. 삼면이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멀리서 보면 수도꼭지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지려는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다. ..
[스크랩] 금성대군의 난 순흥안씨의 세거지인 순흥(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서 큰 사건이 있었으니 '금성대군의 난'이다. 세조 2년(1456년 丁丑),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이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과 밀의하여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사건이다. 시비(侍婢) 김련(金連)이 내통하던 관노와 짜고 격문을 훔쳐 고발하..
[스크랩] 배순 정려비 배순은 조선 중기 때의 사람으로 1615년(광해군 7)에 충신과 효자의 면모를 인정받아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워 표창 받았다. 이를 정려(旌閭)라고 하는데, 정려비는 1649년(인조 27) 그의 손자 배종이 세웠다. 지금의 정려비는 1755년(영조 31) 그의 7대 외손인 임만유가 ‘충신백성(忠臣百姓)’이라는 말을 넣..
[스크랩] 이보흠(李甫欽) : 忠莊公1397년(태조6,丁丑)~1457년(세조3,丁丑), 이력(履歷) 이보흠(李甫欽) : 1397년(태조6,丁丑)~1457년(세조3,丁丑), 영천이씨.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 정조때 시호는 충장(忠莊), 휘 석지(釋之) 할아버지의 다섯째 아들인 부사직(副司直) 휘 현실(玄實) 할아버지의 아들이시며, 어려서 부터 용모가 준수하고 학문을 좋아 하..
[스크랩] 단종복위운동과 금성단 우리고장에는 화려한 문화유산과 조상의 빛난 얼이 담겨져 있으나, 면면히 흘러간 역사속에는 잊지 못할 슬프고도 비참한 사연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나, 특히 단종(端宗)의 복위를 위하여 거사 직전에 발각되어 무참히 죽어간 금성대군(錦城大君)과 부사 이보흠(府使 李甫欽), 수 많은 순흥 사람일..
[스크랩] 두껍바위의 전설 두껍바위~~~ 지금 영주시 휴천동(속칭 광승) 뒷산에는 높이 10m, 직경 7m가량되는 뚜껍바위가 있다. 뚜껍바위는 옛날부터 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으며, 외아들의 명을 길게 해달라는 뜻에서 이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이 많다. 이조 초기에 이 마을에 송석이라는 바보같은 아이가 있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