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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 관광

[스크랩] 소수서원 경자바위

소수서원 경자바위

영주시 순흥면 사현정(四賢井) 위쪽에 백운동(白雲洞)이 있고,
이 동리에 유명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있으니
이 서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액(賜額)받은 서원이다.

이 서원 앞에 죽계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그 천변(川邊)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며 그 밑에 깊은 소(沼)가 있다.
이 소는 별다른 이름 없이
"백운동 소"
라고 불리어지고 있는데 신라 통일기에 이 서원 터에 숙수사(宿水寺)라는 거찰이 있어
인근 뿐 만 아니라 먼 곳에서 수많은 참배자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불행하게도 세조 3년(1457년)
이곳 순흥에서 금성대군과 의사들의 단종 복위 거사 계획이 탄로나면서
당시 세조가 보낸 관군들에 의해 순흥도호부가 혁파되었다.
숙수사도 불타버리고,
백운담 소에는 그때 희생된 의사들의 시신이 많이 수장되었으며
의사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죽계를 타고,
10여리 흘러 멎은 곳을 지금도 피끝 마을로 불리어지고 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려 죽임을 당했던 의사들의 넋이 밤만 되면 울기를
90년 뒤인 중종 37(1542년) 서원 창건 후 까지 이어졌다.
주신재 선생이 돌에 유교이념인 "경(敬)" 을 각 하시고,
그 원혼을 위로하고자 붉은 글씨로 덧칠한 후로는 영들이 울음을 그치고,
편히 잠들게 되었다고 한다.

경(敬)자를 각(刻)한 것은 주자의 철학의 근본이 경에 있기 때문이며
회헌(晦軒), 퇴계의 사상의 근본이다.
이러한 까닭에 공부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한시라도 경건한 마음을 잊지 말라는 뜻도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경자를 새긴 연유의 액자가 아직도 서원에 보관되어 있으며
경자 바위는 지금도 그곳에 남아 있으나
옛날에는 명주실꾸리를 다 풀어 넣도록 깊던 소의 수심은
이제 잔잔한 여울물로 변하여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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