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慶運宮(사적 제124호)■
경운궁은 원래 조선 초기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 뒤 서울로 돌아와서 이 집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면서 궁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하여
정릉동행궁 貞陵洞行宮이라고 불렀으며,
이곳에서 선조가 죽고 뒤를 이어 광해군이 여기서 즉위하였다.
그 해에 창덕궁이 완성되었으므로 광해군이 이곳을 떠났으며,
광해군 3년(1611년) 이 궁에 경운궁 이라는 궁호宮號를 붙여 주었다.
조선 후기 이 궁은 궁궐다운 건물도 없었고 왕실에서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1897년 고종 임금 때 조선왕조가 열강들 사이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왕이 러시아 공관에서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겨 오자,
이 궁은 비로소 궁궐 다운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그 해 10월 고종은 경운궁 태극전에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광무연호를 선포하여 황제에 올랐으며,
이때를 전후 하여 경운궁의 정전인 중화전中和殿 등이 세워졌으며,
고종이 경운궁에 머물고 있던 1904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906년 정전인 중화전이 완성되고 대안문大安門도 수리하였 는데,
이 문을 대한문大漢門 으로 개칭하고 경운궁의 정문으로 하였다.
1907년 고종은 제위를 황태자에게 물려주었으며
새로 즉위한 순종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었다.
태상황太上皇이된 고종은 계속 경운궁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 때 궁호를 경운궁에서 덕수궁德壽宮으로 바꾸었으며,
1910년에는 궁내에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건물인 석조전石造殿이 건립되었다.
이 궁은 비록 조선 말기에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대한제국 말기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 있는 곳으로
조선왕실 궁궐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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