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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 관광

선비정신이 깃든 옛집에서 머물다.(영주 삼판서고택)

 

선비정신이 깃든 옛집에서 머물다.

영주 삼판서고택

 

위치 : 영주시 선비로 181번길 56-1

관광안내소 : 054- 631-0444

 

 

삼판서고택은 고려말에서 조선초 세분의 판서가 연이어 살았던 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판서란 요즘의 장관에 해당하는 고위관직으로 이호예병형공의 6조 최고 책임자를 일컽는 말로서 요즘의 장관에 비유할수 있는 벼슬이 되는 것이지요.

 

삼판서고택의 첫 번째 판서는 고려공민왕 때 형부상서(조선시대 형조판서에 해당)를 지낸 정운경으로 그는 조선 건국공신으로 유명한 삼봉정도전의 아버지이십니다.

과거급제 후 형부상서의 벼슬에 오르기까지 개경에서 생활하다 관직을 사퇴하고 영주로 돌아와 노년을 보냈다 합니다.

두번째 판서는 조선태조에서 태종에 걸쳐 공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낸 황유정으로 첫 번재 판서인 정운경의 사위입니다. 곧 정운경이 이 고택을 딸에게 물려줬던 것이지요. 황유정 판서는 정도전과 처남매부사이로 뜻을 같아하여 조선개국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후 판서의 자리까지 올랐으며, 정도전이 나주등지로 유배를 갈 때 처가인 영주로 낙향해 이 집과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판서는 조선시대 때 이조탄서를 지낸 김담으로 두 번째 판서인 황유정의 외손자입니다. 황유정 역시 정운경과 마찬가지로 사위인 김소량에게 이 집을 물려 주었는데 김소량의 아들인 김담이 이조판서에 이르면서 이후 이 집은 김판서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지며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가로 자리매김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판서 고택의 큰 대문을 들어서면 본채가 보이는데 우측편을 보면 집경루라는 현판을 만날수가 있습니다.집경루는 모든 자손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조상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김판서의 후손 김응련이 고택을 중수하면서 간옹 이헌경(1719-1791)에게 부탁하여 건물의 이름과 중건기를 지었으며 현판글씨는 예조판서 홍의호(1758-1826)가 썼다고 하는데 글씨에 멋이 잔뜩 들어간 듯 합니다.

집경루의 안대문을 들어서면 건물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 대칭으로 이루 졌습니다.이 마루는 육칸대청으로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에는 소쇄헌이라 씌었습니다.

‘소쇄헌’이란 ‘쓸고 청소하고 비운다’는 뜻으로 선비는 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황유정이 노후에 외손자인 김담에게 와서 머물 때 이름지었으며 현재 걸려있는 현판글씨는 2008년 삼판서고택 중건 후 이산 박기진이 썼다고 합니다.대청마루를 올라 벽면을 살펴보면 여러장의 시판이 걸려있습니다.그 중에는 삼봉 정도전의 시 '산거춘일즉사'를 볼수가 있는데 그 내용을 살짝 들여다볼까요?

 

 

일수이화조안명수성제조롱신청유인독좌심무사한간정제초자생 삼봉 정도전

(한그루 배꽃은 눈부시게 밝은데지저귀는 산새는 봄볕을 희롱하네은둔자 홀로앉아 무심하니 뜰에 제 스스로 돋아난풀만 한가로이 바라보네)이 시를 포함하여 몇 편의 시가 더 있으나 이는 직접 찾아와서 살펴봄이 어떨까싶어서 남겨둡니다.

 

 

이렇게 고택을 돌아보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해보세요.소백산 낙동강 발원지에서 흘러온 물줄기로 시작하는 서천을 중심으로 양 도로 가로수로 심어진 벚꽃나무가 봄에는 화사한 분홍빛 꽃으로여름엔 신록의 싱그러움으로가을이면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이 되어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줄 것입니다.이번 나들이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삼판서 고택을 찾아 옛 선비가 되어보심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