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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모음/자료사진

조선 6대임금 단종의 애환이 깃든흔적.... 청령포

청령포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면서  처음으로 유배되었던 곳으로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어서

배로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수 없는 유배지로 적합한 곳이다.

단종은 1457년 6월부터 두달동안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해여름 홍수로 청령포가 범랍하여 영흥리에있는 관풍헌으로 옮겨 유배생활을 했다.

 

청령포앞에 도착을 하니 햇살이 눈부신가운데

청평포로의 통행을 막았던 냇물은 꽁꽁 얼어서 마음껏 드나들수가 있었다.

특히나 눈 썰매용 바구니를 비치해 두어서  출입시 서로 끌어주기를 하면서

쉽게도 드나들수 있는길을

550년전 그토록 드나드는 사람들의을 힘겹게 했었나보다.

 

찾은 시간이 오전중이라

비춰주는 햇살은 별로이 강하지가 못하여 따사로움을 느낄수가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강 저 편으로 보이는 청령포

 

 

 평상시 냇물이 흐를땐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겠으나

꽁꽁언 얼음위를 마냥 걸을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무용지물이 되어 얼음속에 묶여있는 나룻배

 

 조금은 특이하게 생긴 담장과 잘 어우러지는 소나무들과  어각

 

 

 

 

 질척한 마당에 이어지지 않은 담장이

공간의 마를 말하는 듯 이쁜 모습이다.

 

 어각앞에 허리를 깊숙이 숙인 소나무 한그루가 담장의 기와를 헤치고 절을하고 있다.

충신중에 충신의 모습처럼...

 

 동편으로는 충신마냥

소나무 한그루가 어각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소 담장안에 자리한 단종유지비각

 

 비각안의 비문

전면에는  영조의 친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府時遺址碑)"라고 씌여있으며

후면에는 "세황명승정무진기원후삼계메계추 체경서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라 음각되었다.

 

 

 단종어소

단종의 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어소에는 강시 단종이 머물던본체와 긍녀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그 안에 그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밀랍인형이 자리하고 있다.

 

 

 어각입구 대청 머리위에 어제시 라는 시판이 하나 걸려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단종의 거처가

좌측에는 단종의 침실이 마련되어있으며

앞으로는 신하와 궁녀가 머물도록 되어 있었다.

 

 어린단종의 청령포의 일상중

참으로 여리디 여린 모습으로 나약함도 느껴짐은

그 의 일생이 애처로워서 일까?

 

 지상 1.2M높이에서 두갈라로 갈라진 관음송

이 나무의 정확한 나이는 알수 없으나

단종의 유배시절 단종이 갈라진 소나무위에 앉아서 쉬었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봐서

600년 이상으로 보고있다.

이 나무의 이름은 단종의 애환을 보고 들었다고 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지고 있다고 한다.

 

 관음송의 높이가 30M에 달하다보니

내 작은 카메라에 다 담을수가 없었다.

단종의 모습을 관음하는동안 가슴이 많이 아팠는지...

가슴부위께가 많이 엉켜 있음을 볼수 있다.

 

 

 나오는 길....

우리는 눈 썰매용 바구니를 타려는데

강 한가운데로 어릴적 시케토라 불렀던 추억을 들춰주는 썰매를 타는 한 사람을 볼수 가 있었다.

저 넓은 강 곳곳을 맘껏 내달리는 저 썰매하나

 

 

 재미 있으신가요?

 

 나와서 다시 뒤돌아본 청령포

우측편은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 졌네요

 

 

 

청령포의 울창한 소나무 숲

이 숲은 2005년  제 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천년에 숲" 으로 산정되어 우수상을 수상한 숲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축소하여 가져다 놓은듯한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몇년전 갔을때와 그 모습은 변함없으나 전망대 오르는길은 많이 달라져 있었가.

덜어진 오디 줏어 먹으며 힘겹게 올랐던 산등성은 찻길로 변해 있었고

차에서 내리니 김 모락모락 풍기는 포장마차가 자리하고

차에서 내려  가는 200여미터의 거리에도 찻집과 음식접이 유혹을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흩날리는 머릿결을 어찌할바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