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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엔 끝이없다.^^*/한국사 이야기

가짜는 이야기 꺼리도 많다.

 

문화재와 미술품 감정에 관한 일을 하다 보니 주위 분들의 청탁을 피할 수 없어 카운슬링(counseling)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소장자는 진품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작품과 관련해 많은 사설을 늘어놓기 일쑤다. 반면 대부분의 진품 소장자는 말이 없다. 오직 품격으로만 조용히 말한다. 인품과 실력이 갖춰진 사람은 수다스럽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가짜일 경우 그 가품 속에 이런저런 이야기꺼리가 많다. 드라마처럼 꾸며진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속고 또 속이고 있다. 때문에 시장에서 진품이 지속적으로 유통되듯 가품 역시 이 손에서 저 손을 거치며 계속 거래되고 있다.

 

이야기 하나 !

 

몇 년 전 감정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5년 동안 소중히 간직한 이중섭의「소」그림이란 말에 긴장과 설레는 마음으로 작품을 대면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짜였다. 수준도 한참 미달이었다. 진품이 아니라는 나의 말에 놀란 소장자, 그 분의 침통해 하는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소장자로부터 어렵게 입수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소위 ‘나까마’라 칭하는 중간상인이 그를 급히 찾아왔다. 이중섭의「소」그림을 내보이며 자기 고객의 어머니가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 급전이 필요해 사정상 하는 수 없이 이 그림을 처분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현 시세가 1억 정도 호가하는 그림이지만 사정상 그렇게는 받지 못하겠고, 오늘 당장 필요한 2천만원만 받으면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미술품 컬렉터라면 이중섭이란 그 이름 하나로도 귀가 솔깃해지는 법이다. 그 분도 당시 그림의 내용이나 진위보다 이중섭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었다. 돈 욕심이 앞선 그 분은 깎고 깎아 결국 800만원에 구입하여 지금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런 이야기들은 요즘에도 간혹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한 점만이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다른 소장품들 중 반 이상이 가짜였다. 도자기, 고서화를 비롯해 무려 70여점이 진품이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난 뒤 1년쯤 지나 다시 그 집을 방문하였다. 그 때의 충격 때문인지 소장하고 있던 대부분의 작품들이 보이질 않았다. 사연을 물은즉, 귀한 그림 한 점과 교환했다며 그 분은 조심스레 맞바꾼 그림을 보여주었다. 꺼낸 그림은 박수근이 유화로 그린 그림이었다. 박수근이 어떤 사람인가. 현재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 가장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작고 작가가 아닌가. 그런데 그 작품 역시 찬찬히 뜯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한 눈에도 진품이 아니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작품을 구입하지 말라고 그렇게 충고했건만 수집가 입장에서는 싼 가격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부르거나 급매물이라는 포장에 절대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가품들이 너무 쉽게 유통되고 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미술품 관련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속이는 사람은 버젓이 활개를 치고 다니고 속는 사람만이 바보라는 도덕불감증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너무나 만연되어 있다. 개탄할 일이다.

 

이야기 둘 !!

   

지난 2009년 1월 지방에 거주하며 오랫동안 각종 민속품 수천 점을 수집한 분이 감정을 부탁했다. 나를 맞는 그 분의 상기된 얼굴에는 기대감이 넘쳐있었다. 

 

 조심스레 꺼낸 도자기는 인종 장릉에서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94호인 청자참외형꽃병과 거의 흡사한 색과 형태의 도자기였다.  

 

나는 구석구석 차분히 살펴보았다. 전과 바닥이 부분파손 되었고 몸통에도 상처가 있었다.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몸통 상처는 땅에서 파 낼 때 포클레인에 찍힌 자국이고, 전과 바닥은 그 옛날 매장 당시 파손된 것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 말들은 감정을 할 때 전혀 참고사항이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사족일 뿐이다. 진품은 말이 없지만 가짜는 포장된 이야기가 많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넘어 왔을 것이라 짐작 되었다. 그 분은 국보 제94호의 사진을 보여주며 똑같지 않느냐고, 이 역시 진품이 맞는 것 아니냐며, 나에게 진품임을 확인해 달라며 떼 아닌 떼를 썼다.

 이런 일이 있으려 했음인지 전날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인「고려왕실 청자 전」을 관람하며 특히나 국보 제94호 청자화병을 손전등까지 비춰가며 유심히 살펴보았던 터였다. 꼼꼼히 살펴본 덕에 의뢰한 작품과 국보 제94호 화병과 확연히 비교할 수 있었다. 결과는 위조품이었다. 일반인은 진품과 쉽게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국보 청자와 같으나 정교하게 복제한 것이 뚜렷했다. 참외형 몸통의 굴곡과 아래 치마부분의 입체감이 진품에 비해 빈약했다. 아마 사진만 보고 제작한 듯 했다. 바닥과 화병 속 유약이 묻지 않은 태토 부분을 내시경 플래시로 비추어보니 세월의 때 즉 경년변화의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안타깝지만 진품같은 위품이라고 정중히 답을 드렸다. 만약 진짜라면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 하더라도 고가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도 덧붙였다. 다행히 구입하기 전에 나에게 보여 금전적인 손실은 입지 않았지만 얼굴에 실망한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촬영을 거부해 자료를 남기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나에겐 귀한 경험이었다. 일명 짝퉁을 만들어 의도적으로 파손시킨 뒤 마치 진품이 원래부터 파손되어 어쩔 수 없이 가격이 저렴한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수법에 아직 많은 수집가가 속고 있다. 한 술 더 떠 파손한 부분을 다시 보수하여 보수한 부분을 친절히 밝혀주면서 설마 가짜를 보수 했겠는가하며 수집가를 안도케 하는 속임수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나도 인간인지라 100%의 절대감정은 장담 못하지만 직업상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울 때가 바로 현장에서 작품을 접하는 긴장된 순간이다. 현장을 나오면 아직도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자극을 받곤 한다.  

 

이야기 셋 !!!

 

무더웠던 2008년 8월의 일이다.

 컬렉터 한 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좋은 작품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감정을 좀 해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현재 소장자는 마카오에서 노름을 하다 탕진하여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물의 일부를 급히 팔겠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곁가지로 붙어 있었다. 이런 시나리오 들을 땐 이미 진품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마음 한편 혹 귀한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든다. 아마 일종의 직업의식이 아닌가 싶다.  

감정을 부탁한 물건은 하나같이 가짜투성이였다. 간혹 섞여 있는 진품도 수리한 부분이 너무 많아 상품가치와 재화가치가 매우 낮았다.

 

 

그 중 진짜 같은 가짜가 여러 점 있었다. 철화청자매병의 형태와 문양 또한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이런 것은 문양과 형태에서 보면 진짜와 똑같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외부에 인위적으로 흠과 세월의 때를 입히면 판단하기가 쉽질 않다. 이럴 때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곳이 태토가 보이는 굽과 병의 속 부분이다.

 

 

유약이 묻지 않은 태토에 때를 입혀 세월의 흔적을 내려 애쓰지만 그 한계를 보는 안목이 바로 전문가의 예리한 눈이다. 


 우리의 옛 도자기를 사랑하여 수집에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실패한 사람도 많다. 이들 중에는 가품에 속은 마음의 상처로 도자기의 멋과 수집의 즐거움에 등을 돌리는 안타까운 경우도 보았다.

 도자기를 수집하려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도자기의 수집 방법

 

 ① 경제적 여유와 관계는 있지만 반드시 비싼 것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② 재화가치보다 감상의 즐거움을 우선시해야 한다.

 ③ 도자기의 진품과 위(가)품의 제작기법과 유통에 대하여 공부하는

     기회를 가져 보자.

 ④ 진귀한 것만 수집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소박한 ‘미’를 본위로 하는 것이 

     좋다.

 ⑤ 양보다 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⑥ 여러 가지 조건이 불완전한 일류품 보다 차라리 완전한 이류품을 선택

    하는 것이 좋다.

 

고미술품의 이해와 습득을 위해서는 우선 겸손하고 냉정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초보자의 마음으로 주위의 진실한 전문가나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권위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받으면서 한발 한발 배워 나가야 한다.

 오래전부터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각별한 고미술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 고미술을 감상할 때 무릎을 꿇도록 가르친 것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경애심을 느끼라는 좋은 일화이다.

 꽃은 말없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 가치를 더한다.

 가짜의 가공된 이야기꺼리에 현혹되지 말자.

 근본의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며 우리 문화재를 아끼며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는 밝은 2009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문화재청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실 김성한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