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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엔 끝이없다.^^*/한국사 이야기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장동철]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이 화두를 잡고 여러 날을 고민하였다. 분명 출토된 도자편인데 용처를 알 수가 없다.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졌을 것인데 용도를 짐작할 수 없다. 그것을 만든 시절과 세월과 세상이 다르니 머리에는 무수한 현재만 대입되다가 사라진다. 자다가도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르면 비슷한 자료나 도록을 뒤적이나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는 도로 그대로이다.
우리나라의 器皿이나 陶製品, 磁器製品은 대체로 高麗時代의 것은 『高麗圖經』의 陶尊條와 陶爐條를 바탕으로 하고 朝鮮時代의 것은 『國朝五禮儀』나 『世宗實錄』, 『樂學軌範』, 『春官通考』를 비롯한 각종 儀軌등에 나타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가 1931년에 발간한『朝鮮陶磁名考』의 분류도 참고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어디 어느 곳에도 붙일 수 없는 용도 미상의 도자기를 대하면 무슨 고생을 하여 고급의 도자기로 이러한 형태를 빚었는가 하고 반문이 일어난다.
그 일례가 開城 滿月臺 出土의 <圓筒形陰刻蓮花唐草文靑磁>이다. 이 청자는 문화재청이 남북합의에 따라 2007년 5월부터 2개월에 걸쳐 남북공동 발굴작업(시굴조사)을 한 開城市 松嶽山 남쪽 기슭에 있는 高麗의 王宮址로 알려진 만월대에서 출토된 것이다. 높이가 65cm로 도자기로는 상당히 대형에 속하는 이 원통형의 청자는 숙련된 기술로 기벽이 얇고 몸통에는 세련된 솜씨의 蓮花唐草文이 빈틈없이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통의 위와 아래에 작의성을 가진 지름 4cm의 구멍이 뚫려져 있다. 상하로 구멍이 있으면 用器가 아님은 분명한데 용도는 짐작하기 어렵다. 분명히 필요에 의해 생산되어 궁실에 까지 들여왔는데 딱히 집히는 것이 없다. 크기와 형태로 보아 건물 외부에 세운 裝飾器. 궁궐에서 사용된 儀器. 꽃을 꼽는 裝飾器. 上下 구멍을 관통해서 꽂는 裝飾器 등으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합치된 소견은 없다. 구멍으로 보아서는 옆으로 놓은 것 같은데 蓮花唐草文으로 보아 세워 놓은 것 같고 구멍 부분이 무엇을 끼우기에는 보강 장치도 허술하다.



또 다른 예로는 出土址 未詳의 <막대형 靑磁>인데 길이는 13.5cm이며 8각의 면으로 깎아 만들어졌는데 양쪽 끝이 좁아져 둥근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청자는 태토나 유색으로 정확한 고려시대 청자인데 양쪽 중앙을 관통하는 구멍이 있고 釉藥은 중앙의 구멍을 제외하고 모두 施釉되어 있다. 이 청자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가 개진되는데, 하나는 중앙에 구멍이 뚫려진 것으로 보아 직물을 짜는 紡錘車로 보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의 구멍이 크기가 달라 호루라기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추차로는 기능은 가능할 수 있으나 크기와 모양에서 보다 나은 형태가 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고 호루라기라는데도 다른 재질도 많은데 하필 도자기이며 下面은 구멍이 완형인데 上面은 구멍을 작게 한다 해도 부정형인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 밖에 京畿道 廣州市 草月面 鶴東里 4호窯址 出土의 <표주박형 白磁片>도 용도를 알 수 없다. 표주박형태의 백자편으로 크기는 길이 5.5cm, 큰 원의 지름은 6cm, 작은 원의 지름은 3.8cm이며 사용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백자의 용도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하나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고드랫돌(가마니 등을 짜는데 사용되는 용기), 다른 하나는 下面이 露胎된 것으로 보아 가마 바닥을 고르기 위한 ‘攻手’로 추정하였다. 고드랫돌로 보자니 단이 여러 층 진 것이 걸리고 공수로 보자니 상면의 손잡이 부분이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분명히 수요가 있어서 제작된 것이고 작의가 곳곳에 남아 있는데도 도대체 왜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그 시대의 생활상을 낱낱이 알지 못하니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더 많은 자료와 유사 유물의 부족이 안타깝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다시금 이 질문을 화두로 던지며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


▶ 문화재청 김해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장동철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