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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시 정보

[스크랩] 영주 부석사

<영주·부석사>

당나라 등주 해안.

『여보게, 저기 좀 보게.』

『아니 거북이가 웬 여자를 등에 업고 뭍으로 오르고 있지 않은가.』

『어서 관에 고하러 가세.』

어부의 신고를 받은 관원들이 해안으로 달려가 보니 그곳엔 아리따운 처녀가
갈 곳을 몰라하고 있었다.

부하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등주 주장 유지인은 마침 슬하에 자식이 없는 터라
그 처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유장군은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어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거북의 등에 업혀 이곳에 이르게 되었느냐?』

『소녀는 신라 처녀 모화라 하옵니다. 불행하게도 약혼자가 전쟁에 출전한 사이에 중국으로 공출되는 몸이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오면서 생각하니 차라리 죽는 쪽이 현명한 듯하와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묘화의 애절한 사연을 들은 우장군은 천녀같이 아름다운 그녀를 수양딸로 삼아
친딸처럼 귀여워했다. 묘화 역시 자신을 구해준 유장군을 친아버지처럼 정성껏
모셨다.

그러나 묘화는 항상 고국땅 신라를 그리워했으며, 한시도 약혼자 일지도령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라 스님 한 분이 밀항을 하다 잡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은 묘화는 신라인을 돕기 위해 면회를 갔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꿈에도 못 잊어하던 약혼자가 스님이 되어 이역만리에 와 있다니.

묘화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누지 못한 채 스님에게 다가갔다.

『스님, 혹시 일지 도련님이 아니신지요?』

『네, 그렇습니다만… 아가씨는 뉘시기에 제 속명을 알고 있으며, 어찌 신라말을 그리도 잘하십니까?』

『도련님!』

묘화는 그만 반갑고 기뻐, 일지의 품에 안겨 한없이 울고 도 울었다. 일지, 즉
의상 스님 역시 너무도 꿈 같은 현실에 기쁘기도 하고 인연의 묘함을 절감했다.

불행히도 10여 세 때 어머니를 여윈 의상은 15세에 묘화와 약혼했다.

백제와의 전쟁에 출전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돌아와 보니 묘화는 중국에 공출
시녀로 뽑혀 가고 없었다. 이는 의상을 사위로 삼으려는 박대감의 계략이었다.
얼마 후 이 사실과 함께 묘화가 중국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 투신했음을 사신을
통해 알게 된 의상은 출가를 결심했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군사들에 대한 죄책감, 어머니를 잃은 고독감, 그리고 약혼녀의 죽음 등에서 그는 삶의 회의를 깊이 느껴던 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유장군은 의상을 자택으로 모셔 거처케 했다.

의상은 묘화에게 5계를 주고 선묘화라는 불명을 주어 불제자로 귀의시켰다. 이제는 약혼자가 아니라 오직 스님과 신도 사이일 뿐이었다. 의상은 유장군의 선처로 종남산 지상사에 가서 지엄을 만났다.

『내가 꾼 어젯밤 꿈은 그대가 올 징조였구려.』

간밤에 해동에서 난 나무 하나가 중국까지 덮었는데 가지 위 봉황새 집에 여의주 하나가 그 빛을 먼 곳까지 비추는 꿈을 꾼 지엄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손을
기다렸다.

입실하여 《화엄경》의 깊은 뜻을 해석하는 의상을 보고 지엄은 『학문을 거론할 상대자를 만났다』며 몹시 기뻐했다.

공부를 마치고 등주로 돌아오게 된 의상은 장군집을 찾아가 그간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했다.

이튿날 새벽, 선묘화가 알까봐 아직 어둠이 걷히지도 않았는데 의상은 길을 재촉했다. 소식을 들은 선묘화는 미리 준비한 법복과 여러가지 용품을 함에 담아 부랴부랴 해안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의상이 탄 배는 벌써 시야에서 아물거리고 있었다.

선묘화는 눈물을 흘리며 주문을 외웠다.

『나의 본심은 법사를 공양하는 일입니다. 원하옵건대 이 함이 저 배에 닿기를….』

이때 질풍이 불더니 옷함을 새털 날리듯 배에 옮겼다. 이를 본 선묘화는 순간
바닷속에 몸을 던지면서 이렇게 서원했다.

『부처님이시여! 제 몸이 호법 용으로 변하여 세세생생 대사를 모시고 옹호하여 불도를 이루게 하옵소서.』

선묘화의 간절한 염원은 곧 이루어졌다. 큰 용이 물 속에 잠겼다 떠 올랐다 하며 배를 부축하니 의상은 무사히 신라에 도착했다. 이를 지켜본 의상은 인연이란 참으로 끊기 어려운 것임을 새삼 확인했다.

귀국 후 산천을 두루 편력하며 화엄법회를 열어 중생을 교화하던 의상은 676년
태백산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야말로 산천이 수려하고 땅이 신령하여 법륜을 굴릴 만한 곳이로구나.』

의상은 태백산 기슭에 절터를 잡으려고 결심했다.

『대사님! 저 산엔 가지 마십시오. 그곳엔 산적이 5백 여 명이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군요. 그들을 교화시켜 선량한 백성이 되도록 해야 될
테니까요.』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상은 산으로 들어갔다. 산적들은 금품을
빼앗으려 했으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자 『살려줄 테니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다. 의상은 두목을 찾았다.

두목은 선뜻 나타나지 않았으나 의상 스님의 집요하게 부탁하니 험한 얼굴을
내보였다.

『두목, 당신들은 고구려의 패잔병이 아니오? 나라가 망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제 그만 귀화하여 생업을 갖고 열심히 살아양지 이렇게 양민을 괴롭혀서야
되겠소?』

『흥, 듣기 싫소. 목숨을 살려줄 테니 어서 돌아가 조정에 고하려면 고하시오.
이곳은 정병 10만 군이 몰려와도 점령하기 어려울 테니.』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인연이니 내 말에 따르지시요.』

『잔소리는 그만하고 냉큼 돌아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목을 제어 버릴
것이오.』

산적 두목이 으름장을 놓으며 부하들을 부르니 산적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저 승려를 단칼에 처단하라.』

이때였다. 허공에 선묘룡이 나타나 번갯불을 일으키며 큰 바위를 때리니 넓이
일 리나 되는 넓적한 반석이 떨어져 나왔다. 이와 함께 산신은 봉황새로 변하여 이 바위를 공중에 들어올려 떠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변에 놀란 산적들은
의상의 도력에 무릎을 꿇고 참회하며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됐다.

그 후 5백 명이 역사를 하니 절은 6개월만에 완공됐으며, 바위가 공중에 떴다
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라 명했다. 또 봉황새가 나타났다 하여 산이름은 봉황산이라 불렀다.

특히 무량수전 아미타불 밑에서 석등 아래로 꼬리를 둔 채 석룡이 묻혀 있다
하니 선묘의 넋은 1천3백 년이 지난 지금도 부석사에 살고 있는 셈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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