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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시 정보

[스크랩] 국망봉과 배점의 유래

국망봉과 배점지명의 유래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서 초암사(草菴寺)로 가는길
35 Km 되는 곳에 세 그루의 수령 600년 가량되는 느티나무가 서있다.
이곳을 이름하여 삼괴정(三槐亭)이라한다.
이 나무의 남쪽 도로변에 최근 이전한 적은 정려각(旌閭閣)이 있다.
원래 이것이 배점초등학교 운동장 서편에 있던 것을
학생들의 운동에 지장이 있다 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정려각에 매년 춘추로
동신(洞神)으로 모시는 충신이며 효자인 배순(裵純)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배순이란 분은 지금으로부터 500년전에 이곳에 들어와서 대장간을 차려놓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양심적으로 공급하였으며 행실이 착하고,
특히 어버이에게 효가 지극하였으며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또한 지극하였다.
그 일례를 들면 가을에 타작을 할 때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곡식은 다른 마당에서 청결하게 타작을 해서 보관했다.
당시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창건하는 때이라,
모든 철물을 이분이 정성껏 공급함으로
유림사회(儒林社會)에서도 칭찬이 자자해서
퇴계선생(退溪先生)께서 불러 보시고 칭찬했었다 한다.

퇴계선생이 돌아가심에 쇳곳으로 상(像)을 만들어 놓고,
삼년복(三年服)을 입었으며 선조대왕이 붕어(崩御)하시자
매 삭망(每朔望)에 정성들여 장만한 음식을 들고
뒷산에 올라 북쪽 궁성(宮城)을 향해 곡제사(哭祭祀)를 3년동안 지냈다.
그 슬픈 소리가 궁 안에까지 들리어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고 하며
또 배순의 점방이 있던 곳이라 하여
관명(官名)은 평장리이나 모두들 배점(裵店)이라 불렀다.

78살을 살고 죽을때 맑은 날에 큰 비가 왔으며,
그의 앞들에는 까마귀떼가 모여들어 슬피 울며
천하의 효자요. 충신이 운명하는 것을 슬퍼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그의 처가 어느 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기 집을 보니 모두 화염(火焰)에 쌓여 타고 있었는데
그의 남편이 화염에 쌓여 하늘로 등천(登天)하는 것을 보고,
황망히 집에 와보니 집은 아무 일도 없었으며
사랑방에 가보니 부군이 평상시대로 누워 있었는데 운명 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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