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onsanmuseum.net/pic/military/mimg/66.gif)
충북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 경내에
직경이 3m, 높이 1m인 거대한 철로 만들어진 가마솥이 있다.
개태사가 가장 번창했을 때 스님들이 1천여명이나 있었는데
이 솥은 스님들의 공양을 끓이기 위해 만들었다한다. 어느 해의 일이다.
대도견성(大道見省)한 스님이 개태사를 찾아와 「얼마 후 대홍수가 나서 본당의 부처님상이 위험할 것이니
이 가마솥으로 본당에 이르는 물길을 막으면 불상은 안전할 것이다.」 라고 하며 어디로인지 떠났다. 이 말을 듣은 스님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워낙이 큰 스님의 말씀인지라 그 말에 다라 가마솥으로 본당 앞을 막았다.
과연 대홍수가 났는데 불상은 안전하게 되었지만
가마솥은 떠내려가 지금의 연산면 고양리 다리 근처에 묻히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가마솥에 대한 이러한 얘기도 전해오고 있다.
고려말기 왜적들의 침입으로 개태사는 쇠퇴하여가고
가마솥은 녹슬어 쓸모없게 딩굴고 있었다.
왜적들의 침입이 있자 우리나라 군사들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 솥을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이상하게도 이 솥에 밥을 지어먹은 군사들이 잘 싸워
그 때부터 왜적들은 물러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이 솥은 왜적들과는 원한을 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왜적들이 이 솥을 옮겨가려고 할 때면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벼락을 쳐 손을 대지 못했다고 전한다. 한편 이 곳 주민들은 이 쇠솥과 함께 제방을 쌓으면 수해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그들에는 풍년까지 들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가마솥을 보면 두군데 깨진 데가 있는데
한쪽은 주민들이 스님들과 원성이 있을 때마다 화풀이하여 깨졌다하고
한 쪽은 도적이 깬 자리라고 한다. 어느 날이었다.
도적이 무쇠덩어리가 욕심이 나서 가마솥을 깨려고 망치로 두들겼으나
좀처럼 깨지지 않아 도적은 화가 나서 「이 천한 밥솥아 너 때문에 마을이 될 것이 안 돼,
네가 마을에 병을 몰고 오고 흉년이 든단 말이야.」 하며 내려치니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천둥 번개가 내려쳐
도적은 도망치다가 벼락을 맞고 죽었다 한다. 또한 일제시대에는 서울 박람회에 가마솥을 가지고 갔는데
그 후부터 계속 흉년이 들어 주민들이 각계에 진정을 내어
다시 연산땅에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 사람들이 죽어서 염라국에 가면 염라대왕이 "네가 연산의 가마솥과 은진미륵과
강경미내다리를 보았느냐?" 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이는 염라대왕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