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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엔 끝이없다.^^*/불교 이야기

개태사 삼존석불 입상전설

                      개태사 삼존석불 입상전설
 

 

 

 

 

연산면 천호리 산기슭에 자리한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 창건한 국립 대사찰이었다.

개태사 경내에 있는 미륵삼존 불상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 말기 왜구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해 왔다.

물밀 듯이 몰려온 왜적들은 한양을 점령하고 나서

각지방에 내려와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무렵 이 곳 개태사에서는 스님들이 국난을 당하면서부터

호국에 대한 염불을 계속하고 있었다.

개태사에서 스님들이 호국 염불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왜적들은

개태사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왜적들은 절간에 들어와서 주지 스님을 찾았으나 나타나지 않자

절간문을 부수고 야단 법석들 떨기 시작하였다.

왜적들은 대웅전 문앞에 가서 묵직한 문을 열어 제쳤다.

그 순간
「아니! 이게 무슨 불빛이냐?」
대웅전 안을 바라보는 순간 삼존석불에서 빛이 발했던 것이다.

그 불빛을 바라본 왜적들은 눈을 뜨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갔다.

그 때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왜적들은

잔뜩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쳐 대장에게 사실대로 보고를 했다.

그러나 대장은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아니! 그래 사람이 부처님을 쳐다보자 빛이 발해 죽어?」
적장은 믿을 수 없다 하면서 부하를 데리고

개태사에 직접 와서 대웅전 문을 힘껏 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겁이 나고 몸이 떨렸다.

그는 차고 있던 칼을 빼어 들어 우협시불과 중앙불의 목과 허리를 힘껏 내려쳤다.

 그 다음 좌협시불을 내려 치려하자 이상한 불빛이 보이는가 하더니

칼이 부러지고 적장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 이후부터 개태사에는 왜적이 쳐들어오지 못했다 한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절 부근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불이 나서 집과 곡식을 태우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어떤 대는 마을 전체를 불태워 마을이 쑥대밭이 되기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개태사의 잡귀가 하는 것 같으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다.

이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의견을 모으고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기도 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부처님을 만났는데
「개태사의 불상을 원상태로 해 놓고 정성껏 불공을 드리면 화를 면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꿈에 나타났던 부처를 찾아 복구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불공을 드리니 그 후부터는 불이 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철확 전설
개태사 철확은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 경내에 있으며

1973년 12월 24일 도지정 문화재 민속자료 제 1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쳐부수고 후삼국을 통일한 후

그 공훈이 부처님의 가호에 의한 것이라 하여 개태사를 창건하였는데

그 규모가 웅장하여 사옥(寺屋)이 하나의 촌락을 이루었고

승려의 수 또한 수천 명에 달하였다.
이 개태사 철확(가마솥)은 승려들의 공양을 끓이던 것으로

직경이 3m, 높이 1m, 둘레 9m의 초대형 주철 가마솥이다.

이 가마솥을 보더라도 개태사가 전성기에

얼마나 많은 승려들이 상주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가마솥의 뚜껑은 어떠한 것으로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느 해 대홍수가 나서 떠내려가 현재의 연산면 고양리 다리근처에 묻혀 있었다.

일제시대에 발굴하여 연산 공원에 옮겨 놓았다가

1981년 8월 22일 현 개태사 경내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어떠한 철로 어떠한 주조 방법으로 만들어 졌는지

천여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도 부식되지 않고 현존하고 있음은

그 당시의 주조 술에 경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더욱이 일제 말 밥식기 등 쇠붙이는 모조리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 가던 시기에도

 일본에 빼앗기지 않고 보존되었음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