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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관련

[스크랩] 역사의 아품, 순흥의 아품...

역사의 아품, 순흥의 아품...

 

지난 3월 18일 봄향사를 맞아 소백산 아랫동네 순흥의 금성단을 찾았다.

아침일찍 사무실에 나와 운동하고는 양복은 사무실에 두고 바지 저고리에 두루막을 입고

도포와 유건은 가방에 넣어서...

그래 금성단과 금성대군 이야기를 좀 하기로 한다.

 

금성단은 유명 답사지 그늘 아래에 묻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건만, 특별항 행사가 아니고는

찾지않고 늘 스치기만 하는 곳이다.

 

금성대군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여섯 째 아들로 이름은 유이다. 1433년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14

37년     참찬 최사강의 딸과 혼인했 으며, 그 해 태조의 여덟 째 아들이자 신덕왕후 강씨의 두번

째 소생   방석의 봉사손으로 출계하였다. "

                                         세종대왕 왕자 태실...문화재청 사진

 

경북 성주군에 위치한 세종대왕 왕자 태실로 세조인 수양대군, 금성대군은 물론 단종의 태가

함께 묻혀 있다. 성군인 세종이 훗날 일어날 골육상쟁의 피비린내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1452년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과 함께 사정전으로 불려가 물품을 하사받으면서 왕을 좌우

에서 보위   할 것을 약속 하였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정권을 탈취하자 금성대군은 이에 반발하여

삭녕에 유배 당했다.

이 후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당하자 자신의 유배

지였 던 순흥에서 부사 이보흠과 함께 모의하여 단종 복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관노의 고발로 실패로 돌아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32세였다. 1791

년(정조 15년)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을 편정할 때에 육종영의 한 사

람으로 선정되었다. "

 

 순흥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고, 선비촌이 준공되어,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있지만, 바로 그 건너편의 복숭아,사과, 인삼 밭 가운데에 있는 금성단과

금성대군의 위리 안치지에는 누구 한 사람 찾는 사람 없이 정적만 감돈다.

 

위리 안치지에는 중앙에 돌우물 모양의 구덩이를 파고  주위는 (圍) 탱자나무 울타리(籬)에 둘

러 쌓여 있으며,세종의 여섯째 아들, 단종의 숙부,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두번에 걸친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위리안치된 곳으로 결국은  이 곳에서 사사되고 말았다.

 


                                     금성대군 위리 안치지

 

안내문에는 금성대군이 이곳으로 유배 오는 그림과 안치(安置)형벌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본향안치:본인의 고향에서만 유배생활을 하도록 하는 가벼운 죄인의 형벌이고,

 

다음이:절도안치 혼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유형생활을 치르도록 하는 중죄인의 안치

형벌이며,

 

그리고 가장 중한 것이:위리안치거주지를 제한하기 위해 집 둘레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 치

거나 가시덤불로 싸서 외인의 출입을 금한 중죄인의 안치 형벌이다.

                                                금성단

 

가운데 금성대군과, 좌측 순흥부사 이보흠, 우축 단종 복위 운동에 희생된 사람들을 향사하는

제단이다. 복위 거사 실패 후 순흥 고을도 폐고을이 되었으며 숙종조에 순흥부가 복설되고 금성

단을 설치 봄,가을로 향사를 올리고 있다.

오늘이 이향사중 봄향사이다. 이번 향사의 제유사를 맡아, 먼길을 오게되었지만 오늘 향사를

직접 치루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숙종때부터 지방 유림들이 준비하고 향사를 치루지만 그 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을런지, 

이향사가 어찌 지역 유림들의 행사로만 되어왔고 그래야만 하는지...

 

5,18묘역은 3개시.도 행사를 넘어 국가적 행사로 치루고 있는데 오랜 역사속 이지역의

엄청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는 지역의 나이많은 노인들 이 도포입고 의관정제해

조상들이 해오던대로 하는 것으로 치루고있으니....

 

제수 비용도 옛날 지역유림들의 거출로 장만해 놓은 논에서 나오는 몇푼으로는 한번 향사비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노인들 주머니털어 보태야하고...

 

인사차들른 시의원 �들어두고 오늘행사보고 느낀바 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라고

 제복입혀놓고 참여시켰지만 혼자 얼마마한 역할 할런지... ?

 

지난해 국가지정 사적지가 되었으나 아직 지원하나 없고, 이향사도 우리 조상들의 전통과

역사적 가치를 지닌것이니 함게 지키고 보존해 가도록 제도적인 지원책이 마련되길 바랄뿐이다...

 

                          소백산 고치령의 산신각
 
 
부석사 가기전 좌측 소백산맥 중턱에 산신각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금성대군을 모시고 있다.
강원도 산골 지방의 사당, 산신각에는 한을 품고 죽은 단종 영정을 모신 곳이 많이 있다.
이런 고유 민속 신앙은 전국에 산재해 있으며, 특히 최영,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이 효험이 있
다고 알려져 있기도하다.
 
영주 지방에서는 금성대군을 모신 사당이 많으며,고치령 산신각도 금성대군이 순흥에 귀양
해 살다가 죽자 소백산 산신령으로 신격화 하고, 단종영정과 같이 모신 것으로 보인다.
 
 

                                                금성대군 사당

 

충북 진천에도 전주 이씨 금성군파(?) 집안에서 모시는 금성대군의 사당이 있다.

 

금성단은 단종북위 운동를하던 금성대군만을 모신곳이라기 보다, 금성대군과 당시의 순흥부사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들을 모신 제단이다. 복위된 숙종까지 200여년동안 그 자손임을 말하지 못하고

그 지역인의 후손임을 �히지 못하다보니 후손들도 제대로없다......

 

지역의 행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고 전통이고 문화유산임을 잊지말고 많은 이들의 더큰 관심을

바랄뿐이다.....

 

 

2008. 소촌

출처 : 경북문화관광해설사
글쓴이 : 권화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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