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비의 고장 영주/영주시 정보

EBS-TV '한국기행'( 영 주 )

 

 

 

한국기행 65편


영     주


-방송: 2010. 11. 29(월) -2010. 12. 3(금)

-기획: 류 재 호

-구성: 김 문 수

-촬영: 정 석 호

-연출: 고 명 현 


소백산의 정기를 가득 품고, 사람을 부르는 곳.

경상북도 최북단, 그 곳에 자리 잡은 영주다.

 

 

 

 

백두대간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사시사철 천혜의 자연환경을 만끽하고,

소수서원, 부석사 등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영주.


또한 ‘정감록’의 제1승지로써

사람이 살기 좋은 풍요로운 땅과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선사하고,

동쪽으로는 봉화군, 서쪽으로는 단양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예천군,

북쪽으로는 영월군과 접경을 이루며 교통의 중심도시이기도하다.

  

영주를 품고 있는, 바람의 산이라 불리는 소백산.

첫눈이 내린 소백산에는 이른 월동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인삼 첫 재배지인 풍기에선 이맘때쯤 5,6년 된 인삼 수확을 시작한다.

겉으로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풍요로운 곳이지만, 

금성대군과 단종의 슬픈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한 영주. 


선비와 양반의 문화가 유유히 전해지는 영주,

수백 년의 시간을 이어온 영주로 지금 여정을 시작한다.

 

 

1. 소백, 겨울의 길목에서


소백산 능선아래, 첫눈이 내린 경상북도 영주.

그럼에도 유난히 햇볕이 푸근한 산은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들을 부른다.

 

 

 

 

 

 

 

 

깨끗한 죽계구곡의 흐르는 물소리와 더불어 부석사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소백산.

부석사 북소리로 아침을 시작하는 소백산 기슭에 첫눈이 내리던 날.

일찍이 내린 첫눈에, 소백산 품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월동준비로 분주하다.


소백산 기슭에 20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달밭골마을. 

그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던 마을인 이곳에

60여 년 전 고향이 이북인 최현관 삼형제가 이곳 마을에 터를 잡았고,

달밭골 마을 19가구 중 무려 8가구에 최씨 가족이 살고 있다.

산 속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아가는 삼형제 가족이

이제 막 달밭골 마을의 월동준비를 시작한다. 


알이 찬 배추를 뽑아 내년에 먹을 김장을 준비하고,

얼마 전, 수확한 겨우 내내 이들이 먹어야 할 식량 감자들은

삼형제가 만든 토굴에 저장을 해두고,

겨울나기를 위한 땔감을 미리 산속에서 얻어온다.

 

달밭골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종지기 김진선씨가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영주에서 태어나 잠시 객지에서 살다가 6년 전에 돌아온 그는

소백산을 찾는 이들을 위해 집 앞에 자유의 종을 걸어두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화전민들의 음식이었던 옥수수막걸리를

어머니가 빚었던 방식 그대로 아내와 빚어서 등산객들에게 선사한다.


영남의 알프스,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소백산.

그 산에 조금씩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2. 풍기의 힘


예부터, 약초의 명산이라 불리며 삼이 많기로 유명했던 소백산.

그리고 병풍처럼 소백산이 둘러싸인 지형, 영주시 풍기읍에선 올해도 인삼을 낳는다.

 

 


1541년, 중종 31년에 주세붕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했고,

일찍이 산삼을 조공으로 바치며 살아가는 영주 사람들에게

소백산 자연 산삼씨앗을 선물해 주었다. 

깊은 산중에 있던 영주 사람들은 농사 대신 삼을 캐는 데 노력했고,

그 결과, 풍기인삼은 영주를 대표하는 특산물이 되었다.


어김없이 아침 6시가 되면,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5년 동안 공들여 키운 인삼 수확을 위해 아침부터 분주한 30년 인삼농사꾼 박헌기씨.

자식마냥 소중히 키운 인삼은 소백산 자락 품에 안겨있어 더 잘 자랄 수 있었다 말한다.

     

풍기인삼은 인삼농사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30년 째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이영자씨에게도 고마운 존재다. 

특별한 날이면 가마솥에 80마리를 넣고 끓이는 이영자씨는

풍기인삼 대량수확 덕에 닭과 인삼을 끓인 계삼탕을 삼계탕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전통음식으로써 더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말한다.

 

풍기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살맛나는 존재가 되어주는 인삼.

겨울 초입에 들어선 지금, 뿌리가 튼실한 인삼을 만날 수 있는 그 곳 영주로 떠난다. 



3부. 내성천 물길 따라, 고택의 향기 따라


태백산에서 발원해 꼬불꼬불한 길을 거치고 거쳐서 영주시로 흘러오는 내성천.

이 주변엔 예부터 선비의 숨결이 묻어나는 고택이 즐비하다.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덕산고택과 괴헌고택이 나란히 내성천을 앞에 두고 자리 잡았다.

약 200년 동안 조상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택들.

뿐만 아니라, 조상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11월이 되면 연안 김씨 후손들을 시제를 올리고,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면, 시어머니께 배운 궁중요리를 덧붙여 손님상을 차린다.


이산면 두월리를 지나 문수면 수도리까지 흐르는 내성천.

하천은 수도리 무섬마을을 한 바퀴 돌고 또 흐르고 흐른다. 

물위의 섬이라는 뜻을 간직한 무섬마을엔 약 40가구 주민들이 한데 모여 산다,

논도 밭도 없는 마을이지만, 옛 선비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해우당, 만죽재 등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 많아

휴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기운이 바람을 타고 모이는 내성천 주변.

그리고 유난히 이런 좋은 땅이 많았던 영주.

옛 선비들의 삶을 지키고 지켜온 그들의 후손들을 지금 만나러 간다.

 

 

4. 묵밥에 얽힌 슬픈 이야기

  

춥고 어려웠던 시절, 아무데서나 잘 자랐던 메밀로 만든 묵밥은

산사람들의 허기와 배고픔을 채워준 고마운 음식이었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예부터, 순흥사람들에게 묵밥이란 기다림 속에 얻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 기억으로 지금도 순흥면 곳곳엔 30년 동안 묵을 써온 정옥분 할머니를 비롯하여

메밀묵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순흥사람들에게 묵밥은 즐겨먹는 이유에는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그 역사 중심엔 금성대군과 단종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457년. 정축년.

당시만 해도 순흥면은 순흥도호부라고 해서 영남에서 제일 큰 고을이었다.

이곳에 금성대군이 유배를 와서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가 이 상황이 발각되면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산으로 도망가는 일이 생겼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산 위에서 생활하면서 잘 자라는 메밀을 키웠고,

묵밥을 먹으면서 아픈 시간을 견뎌냈다. 


아직도 순흥면엔 당시의 사건을 증명하듯 죽은 영혼을 달랜다는 경자바위,

청다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 그 피가 죽계천을 흘러

안정면 동촌리 마을에서 멈췄다 해서 생긴 피끝마을 등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두레골에서 소백산 산신인 금성대군을 기리는 순흥면 사람들.   


그 옛날, 눈물을 머금은 채 먹었지만, 지금은 추운 겨울, 허기를 메어주는 묵밥.  

가슴 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는, 영주 묵밥에 얽힌 이야기를 떠나본다.



5. 은장도의 고을


선비들의 충절과 여인들의 절개를 상징하는

 충효의 도(刀), 정절의 도(刀) 은장도.

 

 


금수강산인 소백산 기슭에 한 때 금속기술자들이 많았던 시대가 있었다.

예부터, 영주는 장도 공방이 발달해 장도를 사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붐볐으며,

10년 전만 해도 장인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장인들만이 옛것을 지켜가고 있다.


점점 잊혀가는 수백 년 세월의 장도 비기가 꿋꿋이 그 명맥을 이어가는 중심에는

이면규 장인과 고준정 장인이 있다. 

이면규 장인은 갖가지 방법으로 장도를 탄생시키고 있는데,

그 중에 소뼈를 고아서 만든 장도는 백의민족을 상징하며, 

영주 지방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고준정장인은 좀 더 섬세한 은장도 만드는 방법을 조카에게 물려주고 있다.


은장도의 종류로는

그 옛날, 음식의 독을 확인하기 위한 젓가락 모양의 첨자도,

부녀자들의 옷고름에 노리개로 찼던 패도,

호신용으로 선비들이 주머니 속에 지닌 낭도가 있다.

또한 은장도는 임금님의 하사품이 되기도 했었다.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인동장씨의 종택.

이곳에는 수백 년 동안 가문의 유물을 지켜오는 장덕필씨가 있다.

1466년, 그의 조상인 장말손 장군이 여진족 아지발을 물리친 것에

공을 세워 세조가 하사한 패도다. 


‘영풍장도’의 기운을 간직한,

그 곳, 영주로 옛 사람들의 충절과 절개를 찾아 나선다.

 

 

------------------------------------------------------------------------------------

 

지난 11월 2일 이른아침 달밭골에서 두 사람을 만나 초암사로

그곳에서 자락길을 거쳐서 다시 달밭골로

비로봉 정상을 올랐다가 일몰을 본 후

차편 자리 부족으로 조금일찍 정상을 떠나서

홀로 어두워진 자락길을 뛰다시피 걸어 내려오면서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 고명현 PD와 정석호 카메라 감독을 야속하게 생각하면서

어두워진 산길에서 랜턴으로 길 찾으며 뛰어 내려왔던 기억이 있었던

그렇게 제작 되었던 그 프로

이렇게 방송에서 만나게 되었다.

'영주시 여행정보의 모든것'

다음 블러그에서 만나 끌어 왔습니다.

 

http://blog.daum.net/pginsam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