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비의 고장 영주/영주시 정보

순흥의 초군청(樵軍廳)

 

 

 

 

 

 

김교림(金敎林)

영주군(효행)  효자 김 교림(金 敎林)

의성인(義城人)으로 고종조에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그의 부친이 1896년에 횡사(橫死)를 당하자 염시미장( 尸未葬)하고 피묻을 옷으로 서울을 왕래하면서 원통함을 관아에 널리 알려 원수를 찾아 설원을 한 후 안장(安葬)을 하였다. 이로써 효행천(孝行薦)으로 참봉(參奉)에 올랐다.

 

 

의성김씨(義城金氏)

司馬試及第者 世宗29(1447)~高宗31(1894)까지 生員 170인 進士93인

32세 김교림 인직 회남 순조을유 고종25 1888 무자식년 생원 봉화 해저 개암공파

32世 金敎林 仁直 晦南 純祖乙酉 高宗25 1888 戊子式年 生員 奉化 海底 開巖公派

 

 

1. 김교림(金敎林) 본 의성(義城)

 

영주문화 > 현장의 발자취

순흥의 초군청(樵軍廳)  

고려시대에는 국방경비를 위하여 주(州), 현(縣)에 초군(樵軍)을 두었다.

또 나무꾼을 초군(樵軍)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순흥에 있었던 초군(樵軍)이라 하는 것은 농사군을 뜻하는 것이다.

순흥은 예로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의 요충지대요,

역사적 사건과 명승고적이 많은 지방이며 순흥도호부가 설치된 곳이다.

관아(官衙)의 관원들과 관직을 마치고 돌아온 전관, 생활이 부유한 세도가들이 많았다.

세도와 권력등은 이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세도와 권력을 업어서

부내(府內)에 있는 농민, 서민, 일꾼 할것없이 인근 동리나

가까운 인근지역인 안정, 단산등에서 2일 7일에 서는 순흥장날 장을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권력과 횡포가 심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고,

이 사람들은 소백산에 나무를 하러가면 산밑에 있는 주막에서 종일 술을 마시고 놀다가,

해가 질 무렵 주인의 승낙도 없이 나무가리를 뜯어지고 돌아오는 것은 예사요,

만일 주인이 시비를 하였다가는 촌사람이 순흥장은 다 보았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이런 예는 비일비지 하였다.

농군의 행패는 부사도 처리가 힘들었다.

농군이라도 관아에 일하는 관원의 친족이 아니면 구관, 세도있는 집들 일꾼들이니

포졸들을 시켜 잡아들이니 당장 내일 모를 심어야 하고

김을 매야하는 세도집 상전의 구명운동이 벌어지고

이것도 한두번이어야 관에서도 선처하겠지만 번수가 잦으니 피차 난처하게 되었고,

세도집에서도 큰 고충이 아닐수 없었다.

 

물론 일반 인근 주민의 비난은 대단하였음은 말할나위도 없었고 관가에 송사는 끊일 날이 없었다.

이 농군들의 횡포를 늘 걱정하고 이를 선도해 보려고 애쓴분이 있으니,

이는 의성(義城)인으로 개암(開岩) 김우굉(金宇宏)의 후손으로서 김교림(金敎林)이라하며

고종(高宗) 때 진사(進士)였다.

부친이 객지에서 비명횡사하므로 초상을 치루는 즉시

고인이 입었던 피붇은 옷을 입고 상경(上京)하여 널리 알려 원수를 찾아 죽이니.

효(孝)로서 참봉(參奉)을 재수하였다.

 

김참봉이 선친 원수를 갚기 위하여 서울에 가는 기회가 많았으므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농상공부에 들려서 순흥고을 농민들의 행패를 이야기하여

좋은 도리를 강구하여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였더니,

농상공부에서는 농군들에게 자치권(自治權)을 주라는 것이었다.

관에서 간섭하지 말고 그 제도를 지방관청과 같이 하고

명칭은 순흥초군청(順興憔軍廳)이라 하며

둥근 회양목에다 전자로 순흥초군청(順興憔軍廳)이라고 새긴 큼직한 도장과 도장집을 주었다.

 

초군들이 항상 모여서 일할 수 있는 청사도 마련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음)

이 자 치단체의 조직은 우두머리를 좌상(座上)이라 하고,

농군들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자격은 규정이 없으나 인격과 덕망이 있어야 하고 연령적으로도 많은 경륜이 있어야 한다.

좌상의 선출은 음력 정월 16일이 정일이며 여기에 당선되면 농군으로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큰 잔치를 벌리고 동민이 모여서 먹고 마시며 풍악을 울리며 축하연을 배푼다.

 

임기는 1년이고 유임도 가능하다.

초군청인장과 초군청 관계문서를 인수인계하며 좌수의 권한은

그들 세계에 있어서는 부사와 똑같은 권한과 행사를 집행한다.

지금도 순흥에서는 좌상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

순흥초군정인장과 관계문서를 보관하고 좌수의 명의로 문서를 발송할 때는

순흥초군청좌수 OOO하고 청인(廳印)을 찍고 있다.

 

좌수 밑에 이방(吏房)을 위시한 육방(六房)이 있고,

늙은 총각으로서 귀땅머리를 따는 총각대방,

좌수를 수행하는 비장(裨將)등 지방 행정관청과 똑같은 제도이다.

농군들 중에 잘못된 자가 있으면 출두명령서에서 좌수인장을 찍어

초군청에 불러 형방(刑房)이 문초하고 형의 경중에 따라 처벌한다.

순흥장날 장똘뱅이들이 농민의 물건을 강압적으로 뺏거나

시세를 약하게 놓아서 고발만 되면 엄중한 벌을 받는다.

그들의 세계에서 부여받은 권한으로서의 불문율이다.

무서운 조직체였다.

초군청의 조직과 기구도 민주적이기도 하지만 하는 일도 상당히 근대화되어 있다.

 

O 초군청의 하는 일
1. 좌상의 선출 및 임원의 임무수행
2. 초군(농군)의 행동억제, 민폐근절
3. 두래골 성황당 고사(주신 금성대군)
4. 집행, 유사선출 음력 정월 15일 밤
5. 소백산 풀깎기, 길보수(도로보수)
6. 초연 개최 및 초군놀이
7. 산림관리, 도벌방지, 난벌방지
8. 머슴꾼들이 임금 및 농사철 임금 결정
9. 흉사·길사등에 필요한 인원배치
※ 흉사시는 좌수가 모든 상황을 참작하여 인원배정, 물자동원등 현재도 철저히 하고 있음은 아름다운 풍습이고 좋은 전통이다.
10. 순흥부 관내 좌수를 선출한다.
※ 다른 곳은 없어지고 순흥면 읍내리 본부좌수는 변함없이 선출되고 있 다.
11. 후손이 없는 무연고 분묘 1년 1차 벌초를 한다.
12. 무의무탁 행사자(行死者) 장례식
13. 화재, 수해 예방 및 방재를 한다.
※ 지금도 내 일같이 생사를 무릅쓰고 희생적으로 하고 있다.
14. 한발이 심할 때 부락 전체의 실정을 조사하여 능동적으로 초군배치
※ 집단활동을 효과적으로 운영하여 실적거양(좌수가 결정)하고 있다.
15. 영농방법의 개선, 종자의 개량
조직과 운영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자금이 따라야 되는 것이다. 초군청 경상비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충당한다.

O 초군청 경비 조달 (수입)
1. 우두머리세금 징수, 소 한 마리당 5푼, 각 면부에서는 순흥본부에 한 마리당 1푼씩 납부한다.
2. 재산수입, 초군청 소유 가옥세징수
3. 흉사 또는 각종 행사에 얻음 임시 수입.(좌상에 바치면 수입을 잡아서 처리한다. 개인이 받았다고 개인이 처리 못한다. 좌상의 승낙을 받아 처리 한다.)
O 초군청 경비 지출
1. 동네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서로 유익하게 사용한다.
2. 경리에 여유가 있으면 년 1회 초군 친목회를 연다.
O 순흥초군청(順興樵軍廳) 놀이
1. 동·서부 줄다리기(장소 : 성들)
※관에서 주최할만큼 성대하였으나 일제시대 정책적으로 중단되었던 것을 순흥 국민학교에서 재개발하여 운동회 및 각종행사에 실시하고 있음.
2. 지신굿, 마당굿, 모심기, 논매기

순흥초군청과 두래골 순흥수호 산신각과 금성대군 수호신을 모신 성황당은 서기 1726년 창건으로 145년의 세월이 흐른 당시에도 순흥초군에서는 재정이 빈곤함에도 소한마리를 사서 재물로 한다는 것은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풍어제를 지내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우리 순흥에 귀양 오셔서 단종복위를 꾀하다 비참하게 금성대군과 우리선조들이 돌아갔으니, 우리 초군청에서는 성의를 다하여 위로하겠사오니 일년 내내 굽어 살피십사하고 고사를 올리는 것이다. 중한 병에도 약을 바로만 쓰면 병이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들었던 순흥 농군들을 참봉 김교림은 순흥초군청이란 도장 하나로 폐풍을 고쳐서 더욱 착실한 미풍양속(美風良俗)을 낳았으니 그분의 지극한 효심과 내 고장을 사랑하는 애향심의 발로라 하겠다. 이 좋은 전통이 길이 길이 후손에 전하여 보다 나은 발전 있기를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순흥의 역사는 고전(古典), 답사(踏査), 구전(口傳), 각종문헌(各種文獻)을 통하여 고증(考證)되고 하였으나 순흥초군청은 빛을 처음 보는 만치 시대, 인물, 사건, 내용등 많은 착오가 있으리라 믿으나 유일(唯一)한 증거으로서 인장(印章)이 그 내력과 역사를 말해 줄 것으로 믿는다.
<참 고 문 헌>
·군 지:군지편찬위원회 ·초군청인장:순흥면 읍내리 李成九
·증 언:이학영외 노인다수 ·국사대사전:현암사 ·모연문(募緣文)

 

'선비의 고장 영주 > 영주시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비촌 둘러보기  (0) 2010.08.04
부석사 창건설화  (0) 2010.07.27
수도리(무섬) 자료  (0) 2010.07.18
조지훈......별리(別離)  (0) 2010.07.09
푸르름이 절정인 부석사  (0) 2010.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