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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관련

[2009 문화유산 답사기] 운강고택의 절제미와 만화정의 낭만적인 표정

[2009년 상반기 문화유산 답사기 동상 수상작]

     

운강고택의 절제미와 만화정의 낭만적인 표정

  

  홍석주

 

신록이 푸름을 더해가는 늦봄, 마음의 고향으로 길을 떠난다.

차창 밖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고, 들판을 스쳐온 그윽한 꽃향기가 차안에 스며든다.

 대구에서 경산을 거쳐 청도 땅으로 들어설 때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없이 많이 다닌 길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이곳이 나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천면 소재지인 동곡은 나의 외가가 있는 마을로

어릴 때 물고기 잡고 반딧불이 쫓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던 곳이다.

현실의 삶이 팍팍해질수록 어릴 적 추억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는가 보다.

동곡에서 섶말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내가 선택하는 길은 주로 매전 쪽으로 돌아 삼족대를 왼쪽에 끼고 들어가는 호젓한 길이다.

골짜기 따라 펼쳐진 들판에는 대추나무 새순이 연둣빛으로 빛나고,

아스라이 이어진 길가에는 갖가지 들꽃들이 답사객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섶말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고색창연한 살림집과 누정(樓亭)들이 양반 문화의 옛 모습을 전해준다.

 동북쪽에서 뻗어 나온 영남알프스의 능선이 남쪽을 향해 물결치고

서쪽에는 비단내가 휘감아 돌고 있어 이 마을에 오면 언제나 안온한 느낌에 젖는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 왼편에는 ‘섬암고택’이란 살림집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고택은 나의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퇴직하신 후 운강고택을 관리하면서 노후를 보내고 계신 집이다.

운강의 후손인 은사님께서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시면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하신다.

그 반겨주시는 품이 변함없고 따사로워

고택에서 살아오신 분은 나무의 넉넉한 기운을 닮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토담 따라 늘어선 이팝꽃의 안내를 받으며 고샅길로 접어든다.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운강고택(雲岡古宅)’이란 편액이 높이 걸린 대문이 보인다.

이 살림집은 사랑채, 안채, 사당의 3개영역이 각각 'ㅁ'자 모양을 이루며 ‘품(品)’자 형의 구도로 짜여 있어 풍요로웠던 양반 가문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운강 박시묵이 1829년에 중건하였다는, 중요민속자료 제10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9동 80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집이지만 건물과 여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합리적인 공간 구성의 미학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집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사랑채이다.

두벌 기단에 섬돌을 붙이고 디딤돌을 놓은 후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은 집으로 가구의 짜임과 무늬가 간결해 단아한 선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별히 멋을 부린 구석이 없는데도 왠지 마음이 끌려 사랑채 앞에 서면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사랑채와 중문간채를 연결하는 담장에는 기와조각으로 네 개의 ‘길(吉)’자와 간결한 꽃무늬를 정성스럽게 수놓아 관심을 모은다.

‘길(吉)’자는 ‘선비의 말은 참되고 좋은 데서 길하다.’라는 의미라고 하니,

이 문양은 올곧은 삶을 고집하던 선비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툇마루에 앉아있으면 ‘고인을 못 뵈도 예던 길 앞에 있네.’라는 퇴계 선생의 시구가 뇌리를 스친다.

역시 건물은 사람의 영혼과 함께 어우러져야 청랑한 기운을 뿜어내는가 보다.

 

 

사랑채 왼편 뒤뜰로 통하는 곳에 아담한 쪽문이 눈에 들어온다.

내외문이라 부르는 이 문 덕분에 여인들은 사랑채의 남정네들을 의식하지 않고 바로 안채로 드나들 수 있었다.

내외문 옆에는 두 칸짜리 뒷사랑방이 사랑채와 이어져 있는데,

이곳은 내당 여인들이 친가에서 온 남정네와 만나던 방이다.

또한 뒷사랑방과 곳간채와의 이음새 부분에는 작은 문을 달아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였다.

남녀유별의 풍속도 속에서 남녀가 서로의 생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상호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려는 지혜가 엿보이는 구도이다.

 

 

안채에도 여성의 생활을 배려한 흔적이 도처에 배어있다.

대청에 찬장을 설치해 환기를 원활히 하고 후원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게 하였으며,

대청마루 아래에는 디딜마루를 설치해 여성들이 오르내리기 편리하도록 꾸몄다.

또한 며느리가 거주하는 작은방에는 측면 후원을 향해 비밀 통로를 내어 며느리가 남편을 편하게 맞아들이도록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여인들의 생활을 섬세하게 배려한 것으로 그 곡진한 마음이 지금까지도 묻어난다.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이런 고운 마음이 스며있는 것을 보면 그분들의 삶은 참 훈훈하였을 것 같다.

 이처럼 운강고택은 불필요한 장식을 과감히 제거하고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였기에 합리적인 생활 철학과 절제미가 돋보인다.

이 고택의 마당과 뜰은 여백에 온기를 채워주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를 거느리고 있는 두 개의 정갈한 마당은 생활공간으로서 선비의 오롯한 삶의 태도를 암시한다.

또 안채 뒤뜰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난 메꽃 사이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바위가 놓여있어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중사랑채 뒤편 백류원에도 갖가지 꽃나무를 심어 향기를 끌어들였고, 후미진 뒷사랑채 한 편에도 소박한 뜰을 마련해 삶의 여유를 놓치지 않았다.

운강고택을 나오면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도로가 아늑한 분위기를 깨버린다.

불편함을 조금 감수하더라도 골목길을 살려두고 마을을 돌아가는 길을 만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큰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5분 쯤 걸어가면, 비단내를 굽어보는 벼랑 위에 만화정(萬和亭)이 나타난다.

1856년 운강이 별서로 지었다는 건물로 '┎' 형의 정자와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언뜻 보아도 분위기가 운강고택과 사뭇 대조적이다.

 

 

 

정자 몸체에서 왼쪽으로 꺾여 남쪽을 향한 부분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여기서 바라보면 굽이치며 흘러가는 비단내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버들가지 사이로 녹음이 짙어가는 산자락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운강고택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유분방한 멋과 낭만적인 운치가 일품이다.

다만, 정자 앞에 시멘트 다리가 생겨 눈에 거슬리며,

운문댐이 들어선 후 넘실대는 물결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하지만, 누마루 창방 안팎에 많은 글월들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 예전에는 이 풍광에 매료된 묵객들이 참 많았으리라.

 

이곳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나도 시인이 된 걸까? 피어나는 흥취를 보듬어 시조 한 수 지어 걸어본다.

‘마파람 머물다간 만화정 누마루 위,

비단내 물소리가 노래되어 맴돌 때면,

운강이 베풀어놓은  선비 향기 새롭네.’

 

만화정이 아름다운 것은 여기에 깃들어 있는 치열한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이르자 14의사(義士)가 이 만화정 앞뜰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쳤다.

또한 운강의 후손들이 조선 말기에 자주적인 근대화 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후진을 양성한 곳도 바로 이 고택이다.

벼슬도 사양하고 의기를 고집하면서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헌신하였던 이들의 향기는 시간을 초월해 우리 곁에 살아 숨쉰다.

서로의 차이는 상대의 매력을 부각시키면서도 양자를 조화롭게 엮어내는 데 기여한다.

합리적인 공간 구성에서 우러나는 운강고택의 절제미는 만화정의 낭만적인 아름다움과 만나 소담한 멋을 빚어낸다.

이것이 바로 동양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음양의 원리가 아닐까?

더구나 이 두 개의 살림집에는 고인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엄정한 정신이 깃들어 있어 그 매력이 더욱 빛난다.

고인들이 추구했던 부드럽고도 옹골찬 삶의 모습은, 남을 배려하는 데 인색하고 경직된 가치관에 갇혀있는 현대인들에게 참된 삶의 길이 무엇인지 은근히 일깨워준다.

최근 고택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고택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고,

현대적으로 되살리기 위한 정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에 힘입어 운강고택도 새롭게 단장되어가고 있으며 만화정과 강변 오솔길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선진국을 향한 힘찬 용틀임에 발맞추어 나도 문화재 지킴이의 역할을 좀 더 충실하게 해야겠다.

올여름에는 이 고택에서 하룻밤 묵고 가려 한다.

둥근달이 떠오르는 밤, 만화정 누마루에서 비단내를 내려다보며 풍류 한 자락 건져 올린 후,

달빛 흐르는 운강고택 마당을 거닐며 고인의 고매한 영혼과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