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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관련

[2009 문화유산 답사기] 지난 겨울 송소 고택과의 인연

[2009년 상반기 문화유산 답사기 은상 수상작]

  

지난 겨울 송소 고택과의 인연

 

이정은 

 

 

강변역에 있는 터미널에서 10시 20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만에 경북 청송에 위치한 송소 고택에 도착했다.

송소 고택은(이 댁에 대한 소개는 홈페이지 www.songso.co.kr에 자세히 있다.) 송소 심호택 양반의 댁으로 지금은 그 후손이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그대로 잘 보존해 두고 사랑채니 안채니 등등의 방을 펜션처럼 여행객들에게 하룻밤 묵고 갈 수 있게 한 곳이다.

집 앞에 도착하자 워낙 동네 자체도 조용했지만 집안도 조용하고 인기척이 없어 선뜻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데 왠 시커먼 개 한 마리가 살그머니 다가오고 곧 직원분(?)이 오셔서 우릴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예약해 두었던 안채 방 하나에 짐을 놓고 간단한 설명을 들으며 해가 지기 전에 사진을 찍었다.

99칸의 집이라 하여 으리으리하고 상당히 넓직할 줄 알았는데 기대보다는 작아서 조금은 실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박하게 살고자 했던 이 댁 옛 주인 어른의 뜻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외려 정감이 갔다.

 

 

예약이 꽉 찼다고 들었는데 아직 우리 말고는 도착한 손님이 없었다.

차로 15분 거리에 주왕산도 있고 안동과 가깝다보니 대개 다른 곳에서 구경을 한 후 송소 고택에 와서 묵고들 간다고 한다.

왠만한 부잣집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양옆으로 행랑채를 끼고 있는 송소 고택의 솟을대문부터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마당 한가운데 만들어 놓은 헛담과 하트 모양의 초롱불,

뒷간과 측간이라는 화장실 명칭이 남녀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설명도 듣고,

처음 우릴 반겨주었던 개의 이름이 털 색깔이 껌껌해서 ‘껌껌이’라는 것,

봄 · 가을에는 뒷마당에서 음악회도 열었다는 것,

우리에게 이렇듯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있는 분은 오래전 TV 단막극에도 출연한 배우 출신이신데

사장님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가끔 이곳으로 여행 오셔서 며칠 푹 쉬시며 일손도 도우신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설명을 해주시고 난 후 우리가 묵을 방에 불을 지피기 위해 아저씨는 장작을 준비하러 가셨고 우리끼리 집안 곳곳을 별채까지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보았다.

 

 

송소 고택의 가장 큰 특징은 옛날 방식으로 난방을 해준다는 점이다.

장작불로 방구들을 아주 뜨끈뜨끈하게 데워주는데 이것이 한국 온돌의 힘이구나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실제로 자다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혹시나 이불이 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여분의 이불로 바꿔서 깔고 잘 정도였다.

그렇다고 송소 고택의 매력이 겨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집안의 문이 분합문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여름에 모든 문을 활짝 열어 올리면 아주 시원할 것 같다.

 

 

나무 타는 냄새,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송소 고택의 운치에 취해 장작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친구와 담소를 나누다가 순간 퍼뜩 든 생각! 고구마와 쿠킹호일이었다.

취사를 할 수 없다는 건 홈페이지를 통해 알았기 때문에 간단히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간식거리는 챙겼지만 고구마나 감자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장작불로 난방을 해준다는 걸 알고서도 거기까지 미처 준비를 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구워먹으면 진짜 맛있었을텐데...

차로 5분 정도 가면 시장이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택시 뿐 이고 우리에겐 자가용이 없으므로 시장에 나가 사올 수도 없었다.

진즉에 생각해 냈었더라면 아까 터미널에 내렸을 때 사오는 건데 너무 아쉬웠다.

못 먹게 되니 자꾸 더 먹고 싶어지는 군고구마. 미련을 버리기가 참 힘들었다.

떨칠 수 없는 군고구마를 향한 그리움(?) 때문에 다음에 군고구마 해 먹으러 다시 오자며,

혹은 주변에 누가 송소 고택에 온다고 하면 다른 준비물은 아무 것도 필요 없고 꼭 고구마부터 챙기라고 얘기해줘야겠다며 다짐을 했다.

한 술 더 떠 우리 같은 여행객들을 위해 송소 고택 앞에서 고구마 장사를 하면 대박날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렇게 깔깔대고 신나게 웃으며 고구마를 먹고 싶단 맘을 겨우 달래고서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물론 친구와 함께였어도 행여나 심심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시간도 빨리 가고 오랜 만에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며 우리들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아침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며 문 밖에서 아저씨가 우릴 깨워주신다.

예전에 집주인이 사실 때에는 직접 음식을 해서 방마다 상을 차려 주셨는데 지금은 송소 고택 앞집으로 가서 먹어야 한단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나갈 차비를 하는데 밖에서 산새소리, 밤 사이 도착한 다른 방 손님들이 집 구경을 하시는지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도시에서는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생소한 느낌이 왠지 산사에 온 것처럼 아침부터 맘이 평화로워진다.

창문을 활짝 열어보니 아침 햇살이 참 따스했다.

아침식사가 준비된 댁에 도착해보니 우리가 밥값으로 드린 건 일인당 6천원 뿐 이건만 한정식집처럼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원래 아침을 안 먹는데 누룽지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밥이 부족하다 하면 추가 비용 없이 흔쾌히 더 주신다.

시골 인심이 많이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푸근한 정은 아직 남아있다.

배불리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와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한적하고 소담스런 동네였다.

썰매를 타도 좋을 강도 있고, 빨간 종탑이 있는 작은 교회, 깨진 항아리를 화분으로 이용해서 마당을 꾸며 놓은 어느 집주인의 센스에 반하고서는 이제 서울로 가아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알고, 떠날 준비를 했다.

송소 고택을 가기 전 무렵 나는 과도한 업무로 오른쪽 팔목이 시큰대고 전혀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유치원 교사였던지라 따로 휴가도 낼 수 없었고 아픈 손으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병이 더 심해졌다.

조금 있으면 겨울방학이니까 기다렸다 제대로 한의원 가서 치료 받자 하고서 참았다.

그러나 막상 휴가를 받고 보니 또 놀고 싶어져서 마침 친구도 휴가길래 바로 송소 고택을 간 것이었다.

방바닥에 누워 거의 굽는 수준으로 내 온 몸을 푹 지지고 그렇게 딱 하루를 쉬었을 뿐인데 서울에 오자마자 믿기지 않을 만큼 손목이 아무렇지 않았다.

무슨 예수님이 앉은뱅이를 한 순간에 일으켜 세우신 것 마냥 기적같이 내가 그랬다.

모든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내가 휴가 가서 마음이 편해진 탓도 작용했겠지만

멀쩡해진 나를 보면서 우리 엄마께서 하신 말씀이 옛날 사람들이 다 현명한 거라고,

또 그렇게 옛날식으로 살아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옛날 아녀자들이 아궁이에 불 때고 온돌방에 자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부인병도 안 걸리고 산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직접 겪어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그런 것 같다.


조금은 불편해지자고 간 여행이었다.

조용한 곳에서 그냥 심심해질 때까지 푹 쉬자고 작정하고 간 여행이었다. 그

런데 막상 가지고 간 휴대폰이 오히려 성가셨고, 카메라가 귀찮고, 혹시나 심심하면 읽으려고 가져간 책이 무거웠다.

그동안 편했던 것이 불편했고, 불편할 거라 생각했던 것은 편해졌다.

꼭 무얼 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고 삶은 아닐 텐데 우린 왜 늘 무언가를 행하고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쫓기 듯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TV나 인터넷 없이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갖고도 충분히 행복하고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이렇게 있는데...

막상 몸과 맘이 편안해지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소유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때론 게으름뱅이로 가난뱅이처럼 살아도 좋을 것 같다.

게을러져도 가난해도 어느 누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 송소 고택에 올 겨울에 다시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