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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 관광

[스크랩] 월인석보月印釋譜

우리나라 한글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손꼽히는
월인석보에 대하여 소개드립니다.

희방사에 책판이 보전되어 왔었으나,
6.25 전란으로 인한 공비소탕작전에 의하여
사찰이 소실되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지요.

월인석보는,
조선 세조 5년(1459년),
임금이 그의 아버지 세종 임금이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을
설명 부분으로 하여 합편 한 책입니다.

중간본으로는,
선조 1년(1568년) 영주 소백산 희방사에 책판이
보전되어 왔으나, 6.25전란 시 공비토벌작전에 의하여
사찰이 소실되어 지금은 모사본만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월인석보月印釋譜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세조世祖 5년(1459년) 임금이 그의 아버지
세종世宗임금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설명 부분으로 하여 합편 한 책이다.

월인석보를 편찬編纂한 동기는
죽은 부모와 일찍 죽은 아들을 위한다고 되어 있지만,
어린 조카 단종端宗 임금을 몰아내 죽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死六臣 등 많은 충절 신하를
죽인 끝에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회한悔恨과 무상無常의
깊은 수렁 속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석보상절釋譜詳節로 미루어 보아서 모두 24권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중간본까지 합쳐도 완질이 되지 못한다.

현재 전하는 간본 중 권1·2는 초간본이 서강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2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중간본으로는 선조 1년(1568년) 영주 소백산 희방사에 책판 冊版이 보전되어 왔으나,
6.25전란 시 공비토벌작전에 의하여 사찰이 소실되어 지금은 모사본만 전해져 오고 있다.

또 하나의 중간본으로는 영주 소백산 비로사의 책판이 보전 되어 오고 있는데,
1957년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축소 영인하였다.

이 월인석보月印釋譜는 한글 창제 직후에 간행된 산문자료로서
국어국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데,
특히 권1 앞에 훈민정음訓民正音 언해본諺解本이 실려 있어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세종世宗과 세조世祖의 2대에 걸쳐
임금이 짓고 편찬한 것으로 현존본現存本에 나타난
판각기법이나 인출印出 솜씨 등을 보면
조선초기 불교문화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종 임금의 훈민정음 반포 당시에 편찬 간행되었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세조 때 다시 편집하였기 때문에 초기의 한글 변천을 살피는데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세종임금이 지은 악장체의 찬불가讚佛歌 로서,“월인천강”이란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한다는 의미이다.
☞석보상절釋譜詳節
·세조가 수양대군으로 있을 당시 편역한 석가모니의 가계와
그 일대기를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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