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 모음/자료사진

각화사와 태백산사고지

각화사와 태백산사고지

현재 태백산사고지는 급격한 경사지에 철제 울타리가 쳐진 안쪽으로

평탄지 위에 주춧돌만 찾아볼 수 있다.

 

 

 

태백산사고는 한양의 춘추관,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 사고와 함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외사고(外史庫)의 하나로, 선조 39년(1606년)에 설치돼

일제시대인 1913년까지 300여 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이다.

일제가 주권을 침탈한 이후 이곳에 보관돼 있던 실록은 규장각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옮겨졌다가 다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겼다.

이후 빈 건물로 30여 년간 방치되었다가 독립군과 일본군의 교전으로 인한

화재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한다. 그 뒤 산사태 등으로 터마저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을 1988년 겨우 터만 발굴하고, 1991년 2월 사적 제348호로 지정했다.

태백산 사고본의 실록은 부산의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돼 있으며, 영인본으로

간행된 것은 이 태백산 사고본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4대사고로 한양의 춘추관과 함께 충주,전주,성주에 사고가

설치되어있었다. 사고지가 이곳에 들어오게 된 까닭은 선조25년(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서울 춘추관, 충주사고, 성주사고가 소실되고, 전주사고본만

남아 내장산, 해주, 강화도, 묘향산으로 소개하여 겨우 난을 면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14대 선조 27년(AD 1594) 9월에 비변사에서 외사고 설치를

필택절험지 인적부도처 삼재불입지에 설치하여 환난을 방비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며, 선조 38년(1605년) 10월 경상도관찰사 류영순의 장계 에 의하여

태백산(각화산)으로 입지가 결정되었고 동 39년(AD 1606) 5월에 새로 재간된

조선왕조실록(중초)을 봉안하게 되었다.


 

 

사고의 구조는 실록각이 세워지고 선원각, 포쇄각, 근천관 의 순서로

배치되었고 방 3칸 중층으로 된 실록각과 선원각의 둘레에는 담장을 쌓았고,

그 북쪽에 동문을 달았다한다.

각화사 답사

각화사는 스님들의 수행정진도량으로 정숙해야 한다.

                                                     수행정진도량

 

 

 

 

태백산 각화사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559번지 각화산 중턱에 있는 각화사는 경북 봉화군 춘양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진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춘양면에서 각화사로 들어가는 길은 온통 사과밭으로 되어 있어 사과향기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길을 가면 산길이 끝나는 곳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각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 말사이며, 천년고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