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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관련

신 원 사, 마 곡 사

신  원  사


개 요

신원사(新元寺)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재한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화상이란 고승이 창건하고 그 뒤에 여러번의 중창을 거쳐 1876년 보련화상이 고쳐 짓고 1946년 만허화상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신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의 건물 지는 신원사와 중악단 남쪽에 전개된 넓은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금당지를 중심으 로 신원사의 원건물지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나 조사의 결여로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금당지로 믿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층의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본래의 사역이었음을 쉽게 알게 한다.
이와 같은 원금당지를 중심으로 석탑이 있는 이외의 현재의 신원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대웅전의 우측에 독성각이 좌측에는 영원전이 있는데, 이들은 최근에 신축 혹은 개수가 이 루어져 있다. 한편 대웅전에는 전내에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하여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좌 측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신라 말 고려 초기의 석탑양식인 5층석탑은 충청남 도 유형문화재 제31호이다. 이 밖에 대웅전에서 약 50여m 거리에 한국산악신앙의 제단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계룡산중악단'이 있는데 보물 제1293호다. 주변의 암자로는 고왕암, 등운암, 선광원, 소림원, 불이암, 금용암 등이 있다.



마  곡  사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절.

마곡사 /마곡사5층석탑(고려 후기, 보물 제799호, ...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절은 고려 문종 이후 100여 년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으나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아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가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이 절의 가람배치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대광보전(보물 제802호)·5층석탑(보물 제799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며 그 주변으로 영산전(보물 제800호)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국사당·대향각·흥성루·해탈문·천왕문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밖에 중요문화재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보물 제269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보물 제270호),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 동제은입사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등이있다


마곡사대광보전 /마곡사대광보전(조선 후기), 보물 제802호, ...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건물. 보물 제802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51년에 각순대사가 대웅보전과 함께 중건했으나 1782년 다시 소실된 것을 1788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석 기단 위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평면구조를 가진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로 평방(平枋)을 두고 외3출목(外三出目)·내4출목(內四出目)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살미첨차는 3앙1수식(三仰一垂式)으로 앙서 위에는 연꽃 봉오리가 표현된 데 비해 뒷면에는 중첩된 교두(翹頭) 형태의 살미첨차가 조각되어 있다. 건물의 내부는 무고주(無高柱)·1고주·2고주가 절충된 형식으로 공간구성이 특이하며, 우물마루의 바닥에는 갈참나무 껍질로 만든 자리를 깔아놓았다. 천장은 2단의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대량(大樑)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불단을 서쪽에 설치하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상 1구를 동쪽을 향해 앉힌 배치방법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마곡사대웅보전 /마곡사대웅보전(조선 중기), 보물 제801호, ...

마곡사 뒤편의 높은 언덕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801호. 1651년과 1842년 등 몇 차례의 중수 및 개수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앞면 5칸, 옆면 4칸의 1층과 앞면 3칸, 옆면 3칸의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팔작지붕의 중층건물이다. 아래층은 가운데에 있는 3칸을 일정한 간격으로 구획하여 삼분합(三分閤) 띠살문을 달았고, 양 끝칸에는 쌍여닫이 정자(井字) 살문을 달았다. 위층에는 정면에 채광을 위한 빗살창이 있으며 나머지는 판벽(板壁)으로 막았다. 기둥은 배흘림이며 그 위에 평방을 두고 공포를 짜올린 다포식(多包式)이다. 공포는 위·아래층 모두 3출목으로 짜올렸으며, 기둥 사이의 포작은 1개씩 배치하였으나 위층 측면의 양쪽 끝칸에는 생략했다. 외부의 살미첨차는 3개의 쇠서가 앙서 모양을 하고 있고 그 위에 연꽃과 봉황머리를 조각하여 장식했으며 내부의 살미첨차는 1개의 장식판처럼 운궁(雲宮)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높은 기둥이 층마루없이 곧게 늘어서 있고 천장은 우물천장이다. 현판의 글씨는 김생(金生)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마곡사 영산전 /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800호.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며 현판은 세조가 이곳에 들렀을 때 직접 써서 사액(賜額)한 것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동쪽을 향하여 세워져 있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은 배흘림이 뚜렷하며 공포는 외2출목으로 내부에는 출목이 없어 앞면과 뒷면이 전혀 다르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며, 기둥 위에만 장식한 주심포(主心包) 형식이다. 내부의 살미첨차는 보머리 모양으로 처리했는데 특히 쇠서의 끝부분이 안으로 심하게 말려들어간 점은 조선 후기 목조건축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건물 내부에는 높은 기둥을 배열하고 그 위에 대들보를 얹은 다음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치도록 하고, 측면에는 2개의 높은 기둥이 직접 종량을 받치도록 했다. 천장은 상하 2단으로 구분된 우물천장이며 다포식과 주심포식이 절충된 형식이다. 우물마루에는 뒷면과 측면에 불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삼존불과 천불을 안치하였다. 전체적으로 짜임새있게 만들어진 이 건물은 배흘림이 완연한 기둥과 공포 형식에서 조선 중기 목조건축 양식을 보이는데, 이는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예이다.








마곡사5층석탑 /마곡사5층석탑(고려 후기), 보물 제799호, ...

마곡사 대광보전 앞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탑. 보물 제799호. 높이 840cm. 1782년 대광보전 화재 때 많이 파괴되었으나 현재 화강암으로 보수되어 있으며 1972년 탑을 해체·보수할 때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특이한 상륜이 놓여 있는 구조로 일반적인 석탑형식을 따르고 있다. 상층기단에는 양쪽 모서리에 우주(隅柱)가 형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안쪽으로 둥근 형태의 기둥이 1개씩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갑석(甲石)은 높고 폭이 넓은 편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며 상층기단의 갑석 위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높은 2단 굄이 있다. 탑신의 옥개석과 옥신석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옥신석은 각 층마다 양쪽으로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그 사이로 1층 탑신의 남면에는 문비(門扉)와 자물통이 조각되어 있고, 2층의 각 면에는 불좌상 1구씩을 새겨 사방불(四方佛) 형식을 취했다. 2단받침의 옥개석은 전체적으로 곡선을 이루며 처마 끝부분의 반전(反轉)이 심해 장식화 경향을 보여준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 위에 풍마동(風磨銅)이라는 청동제로 된 부재가 놓여 있는데, 그 형태는 3층의 전각형 건축물 위에 원형의 복발(覆鉢)과 보주(寶珠)가 놓여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상륜부의 형식은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중국 원대의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여 원나라와 문화적으로 교섭이 빈번했던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적어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점과 옥개석의 심한 반전 등에서 고려 후기 석탑의 양식적인 특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