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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관련

오해하지말아줘요... 전 전통방식이라구요!

오해하지말아줘요... 전 전통방식이라구요! 

 

- 기와지붕과 콘크리트의 오해 그리고 진실 -

 

 

어느 날 취재차 오셨던 기자님께서 평소에 정말 궁금한 게 있었다며 질문을 퍼부었다.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늘 경복궁에 와서 많은 건물들을 보니 정말 궁금한 것이 있어요. 왜 지붕위에 콘크리트를 바른거죠? 일제 시대에 조선의 정기를 말살시키려고 일본인들이 한 것인가요?

아... 지붕 위 용마루 부분이 하얗게 되어있는 걸 보고 그렇게 생각하신 거였다. 조선 정기 말살까지 생각하셨다니...

전통건축기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일반인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일이다.


그 기자님께서 보셨던 경복궁 근정전 지붕은 아니지만 바로 다음과 같은 모습에 오해에 빠지셨을 것이다.

 

   종묘 영녕전 지붕 : 빨간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우리의 오해에게 오해를 부르는 부분

 

  아쉽게도(?) 저 부분은 콘크리트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누군가도 오해했을지도...

 

 이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양성바름’ 으로, 양성바름은 일반 건축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고 주로 궁궐과 관련된 곳에서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하는데, 위 사진을 예를 들면 위에 사진은 종묘 영녕전으로 종묘에는 ‘종묘 정전’과 ‘종묘 영녕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정전과 영녕전 건물에만 ‘양성바름’을 했다.  (나중에 종묘를 방문한 기회가 있으시면 꼭 살펴보시길...)

 

일반적인 건물에서 지붕의 용마루 부분에 대한 처리는 다음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암기와를 홀수로 몇 장 엎어 쌓고 그 위에 수키와를 올려서 마무리 하는 것이 기와 지붕 용마루마감의 방법이다. 

 

그러나 양성바름은 건물의 격식을 높이는 일종의 장식으로, 수키와를 쌓고 그 겉을 다시한번 감싸 발라 한 번 더 마무리를 하여 용마루를 치장했다. 뿐만아니라 위에서 예를 들었던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모셔둔 매우 엄숙한 곳으로, 이곳은 검은색 지붕과 흰색의 양성바름이 대비되어 더욱 엄숙하게 느끼도록 한다.

그렇다면 양성바름은 왜 하얗게 보이는 걸까?

문화재수리를 하는데 기준이 되는『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의 지붕공사 부분을 보면 양성바르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양성바르기 

: 지붕마루기와이기를 한 위에 생석회반죽을 밀실하게 올려 균열 및 탈락 현상이 발생되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양성바름이 하얗게 보이는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양성바름의 주재료가 되는 이용되는 ‘생석회’가 양성바름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이다.

생석회(生石灰)는 탄산칼슘이나 석회석을 구워 만든 분말로 다른 말로 강회(剛灰)라고도 불린다. 강회는 표백분·카바이드·시멘트·유리 등의 원료 뿐 아니라 석회비료·토질안정제·소독제·건조제 등 다방면으로 사용되고 있다.

 양성바름을 할 때 물도 사용되지만, 일반 흙이나 기타 추가적인 보조재료를 몇 가지 더 섞어서 이용한다. 그러나 주재료는 생석회였기 때문에 마르고 나면 흰색을 띄게되어 우리가 쉽게 착각하는 시멘트처럼 보였던 것이다.

 

윗 사진의 지붕 용마루 부분도 그렇지만 위의 종묘 영녕전 사진에서 아랫담에 수키와 끝에 마무리 되어 있는 부분(파란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도 쉽게 콘크리트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주로 한옥의 지붕을 마감할 때 수기와 끝부분에 둥글게 채워 넣는 것으로, ‘아구토’라고 하는데, 이것 또한 원칙적으로는 강회를 사용하기 때문에 하얗게 보인다.

여기에 짤막하게 또 하나 콘크리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서울 광화문 광장 시작을 보면 한창 ‘광화문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왜 복원 하는 걸까? 전에 있던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태조 4년(1395) 경복궁 창건 당시에 함께 지어졌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후에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당시 조선총독부청사 건립에 따라 1925~27년 사이에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하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시 광화문 문루가 파괴되었고, 1968년 12월 현재 위치에 지어졌다. 그러나 이때 새로 지어진 광화문은 경복궁의 다른 건물과는 달리 목조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다. 1960년대 정부의 공업화정책으로 문화재 복원에도 철근콘크리트가 자주 사용되었다. 특이한 점은 현대와 전통의 조화를 꾀하려고 했던 것일까?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은 전체를 일체화하여 만드는 일반적인 건축방식이 아닌, 각 부재별로 제작되어 조립하는 전통목구조(?)의 방식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은 2007년 7월 ‘광화문 복원’의 시작과 함께 철거되어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 옆 잔디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의 주간포 부분 

  

 ▲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의 지붕부분

 

본 기자는 이러한 21세기 괴물이 사라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치 자신이 전통건축인양 단청 옷까지 입고서 버젓하게 서 있던 모습이 사라져서 참으로 속 시원하다.

답사를 다니다 보면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면서 목조건축 흉내를 내는 건물들은 옛 광화문 말고도 가끔 마주치게 된다. 주로 지방의 개인 전시관에서 많이 봐왔는데, 물론 나무로 짓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한옥이 대부분인 이러 곳에서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가짜가 진짜흉내를 내면서 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것이야 말로 콘크리트 덩어리였는데 정작 전통방식이 콘크리트로 오해받고 있어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 기사를 통해 건축문화재와 콘크리트에 대한 작은 오해가 하나 풀렸기를 기대해 본다.

 

 

 

▲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윤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