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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기록 유산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세계 기록유산이란?

도서관·문서고 등에 보관된 세계적 가치가 있는 값진 기록물을 보존·활용하기 위해 1997년부터 2년마다 국제자문위원회(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에서 심의·추천하여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지정하는 유산을 말한다.

세계기록유산에는 필사본·도서·신문·포스터 등 기록이 담긴 자료, 그림·프린트·지도·음악 등 비기록 자료, 전통적인 움직임과 현재의 영상 이미지·오디오·비디오, 원문과 아날로그 또는 디지털 형태의 정지된 이미지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 데이터 등이 포함된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인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기 위한 기준은

첫째, 한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자료,

둘째, 역사적 중요시기를 이해하는데 중요하거나 그 시기를 특별한 방법으로 반영하는 자료,

셋째, 세계사 또는 세계문화 발전에 기여한 지역에 대한 정보를 지닌 자료,

넷째, 세계사 또는 세계문화에 기여한 인물에 관련된 자료,

다섯째, 세계사 또는 세계문화의 중요한 주제를 기록한 자료,

여섯째,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뛰어난 미적 양식을 보여주는 자료,

일곱째, 하나의 민족문화를 초월하는 뛰어난 사회적·문화적 또는 정신적 가치를 가지는 자료 등이다.

또한 등록보조기준으로 완성도가 탁월한 자료이거나 희귀한 자료 등이다.

 

한국은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 일기,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 조성왕조의계 등6가지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동의보감이 우리나라 7번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6가지를 정리하여 본다.

 

1. 훈민정음

 

이 책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서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본이다.

 1997년 10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음

 

 

2. 조선왕조실록

    이 책은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역사적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로 기록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사료의 편찬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도 보장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작업은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실록청을 열고 관계된 관리를 배치하여 펴냈으며, 사초는 임금이라 해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다. 사료가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실록을 보관하던 창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지만 20세기 초까지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남아서 전해내려 왔다. 정족산사고, 태백산사고의 실록은 1910년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었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남은 27책만이 경성제국대학(현재 서울대학교)으로 돌아왔고(1932년), 추가 확인된 47책은 93년만인 2006.7월 일본으로부터 반환되었다. 오대산사고본 47책은 기존 규장각 소장 오대산사고본과 동일본으로서 국보 제151호에 추가 지정되었다(2007. 2.26) 적상산사고본 실록은 구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갔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태백산사고본 848책은 국가기록원 부산지원으로 이관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74책, 기타 산엽본 21책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직지심체요절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간단히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은 백운화상 경한이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에 필요한 내용을 뽑아 1372년에 펴낸 불교 서적으로, 상·하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나라에서 받아온 불조직지심체요절의 내용을 대폭 늘려 상·하 2권으로 엮은 것이다.

중심주제인 직지심체는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직지를 직지심경(直指心經)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불서(佛書) 중 직지는 경(經)이 아니라 요절(要節)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것은 하권 1책 뿐인데, 1900년대 말 콜랭 드 프랑시 주한 프랑스 공사가 프랑스로 가지고 갔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78년 이상 앞서 편찬되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01년 9월 4일 《승정원일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4. 승정원 일기

   인조 1년(1623) 3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왕명을 담당하던 기관인 승정원에서 처리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취급하였던 행정사무, 의례적 사항 등을 매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수량은 총 3,243책 393,578장에 이르며, 종이질은 닥나무종이이다. 이 책에 관여한 사람들은 정3품 승지 6명, 정7품 주서 2명이며, 도승지는 이조, 좌승지는 병조, 우승지는 호조, 좌부승지는 예조, 우부승지는 공조, 동부승지는 형조의 공사를 나누어 담당하였다. 주서가 기록을 담당했고, 그가 자리를 비우면 가주서가 대신 그 일을 맡았다. 전쟁기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전쟁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사변가주서가 담당했다. 이 책은 생산기관의 명칭과, 책명을 변경해가며 1623년 3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280여년간 그 작업이 계속되었다. 역사를 연도에 따라 서술하는 편년체로서 날짜순으로 배열하였고, 월별로 책을 만들었는데 분량에 따라 한 달에 2책으로도 만들었다. 조선 전기의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리고 말았다. 또 1592년 임진왜란 이후 1623년까지의 일기도 이괄의 난 때 거의 불에 타버렸다. 인조 때 1592년 이후의 일기를 보수하였으나, 영조 20년(1744) 승정원에 불이 나면서 모두 타버렸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일기 역시 보수한 부분이 상당히 많으나 보수에 최선을 다하여 그 역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국가의 중대사에서부터 의례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국정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정원의 전모가 기록되어 있을 만큼 방대하여,『조선왕조실록』편찬을 위한 첫 번째 사료로서 그 가치가 대단히 높게 평가되는 기록물이다

 

 

5.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

 

- 고려대장경판 : 81,258판

- 제 경판 : 1098년부터 1958년까지 불교 경전과 불교 역사, 불교 계율, 불교 연구논문, 고승의 문집, 계율판, 불교 판화 등 5,987판

고려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제작은 한국이 13세기에 일구어낸 위대한 문화적 업적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려대장경판은 81,258 목판에 새긴 대장경판으로 아시아 전역에서는 유일하게 완벽한 형태로 현존하는 판본자료다.고려대장경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완벽한 불교 대장경판으로 산스크리트어에서 한역된 불교대장경의 원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대장경판은 인도 및 중앙아시아 언어로 된 경전, 계율, 논서, 교리 및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물을 집대성하여 한역한 내용과 더불어 중국어가 원문인 일부 문헌을 선정하여 수록하고 있다. 그 엄청난 규모로 볼 때 이러한 대장경판의 제작은 상당한 국고 및 인력의 투입을 필요로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에 소장되고 있는 고려대장경판과 제 경판 87,000여장의 목판은 1098년부터 1958년까지의 오래 시간에 걸쳐 완성된 경판들로써 국가제작판과 사찰제작판으로 나뉜다.

국가제작판은 고려대장경으로 81,258판 5,200여 만자에 달하고, 사찰제작판은 5,987판이다. 고려대장경판은 이미 사라진 초기 목판제작술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한편, 고려시대의 정치, 문화, 사상의 흐름과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역사기록물이기도 하다.

경판 표면에는 옻칠을 하여 글자의 새김이 760년이 지나도록 생생한 상태로 남아 현재까지 인쇄할 수 있을 정도이다.

 

※ 대장경(大藏經)은 불교의 교조 석가모니가 일생동안 설법한 경전과 계율, 그리고 그 내용들에 대해 후대의 사람들이 첨부한 논서, 주석서, 이론서들을 집대성한 불교경전(佛敎經典)의 총서(叢書)를 가리키는 말이다.

 

6. 조선왕조 의궤

   

-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된 546종 2,940책의 각종 의궤

-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된 287종 490책의 각종 의궤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이다.

같은 유교문화군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의궤는 조선시대 600여년에 걸쳐 (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 등 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져 있어 600여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총 3,895 여권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 이해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m에 걸쳐 표현하고 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outstanding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를 지니고 있다.

세계사 맥락에서 유교의 중요성이 저평가되고 있는 면이 없지 않다. 유교는 세계의 조그만 한쪽 구석에 존재했던 문화가 아니다. 유교가 지배했던 영토는 그 면적으로 볼 때 서유럽보다도 몇 배나 컸으며 인구 수에 있어서도 유럽, 서남아시아 및 중동을 초과하는 큰 규모였다.

유교권은 최소 14세기까지 전세계를 2~3개 권역으로 분할하던 주요 문화권 중 하나였다.그러나 중국의 경우 수차례에 걸친 야만족의 침입과 이들에 의한 점령으로 인해 시간이 경과하며 전통 의식은 원형을 점차 잃어갔다. 특히 몽골 침입 기간 동안 유교 의식을 수록한 문헌 상당수가 소멸됐다. 이에 반해 한국은 그러한 침입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전통 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천 년 동안 진정성을 훼손하지 않고 유교 의식을 봉행하는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의궤는 대부분의 유교사회에서 잊혀진 과거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의궤는 조그마한 군주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한때 세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유교 전통의 핵심을 대표하는 기록이다.조선왕조 의궤는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남아공 프레토리아)에서 2007.6.14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7. 동의보감---동의보감이 7번째 기록유산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25권 25책. 고활자본(改鑄甲寅字). 1613년 훈련도감에서 간행되었다. 1596년(선조 29) 선조의 명으로 허준·정작(鄭碏)·양예수(楊禮壽)·김응탁(金應鐸)·이명원(李命源)·정예남(鄭禮男) 등이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필요한 보다 간략하면서도 실제 의료기술에 필요한 의서로서 편찬하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597년 정유재란을 맞아 중단했던 것을 전쟁이 끝난 후 허준이 혼자 다시 편찬하여 1610년 완성했다.

정작은 승려의사로 권위가 있었으며 양예수는 그당시 조선의 의사들이 존중한 〈의림촬요 醫林撮要〉 13권을 교정한 경험이 있는 의사였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의서는 물론, 중국에서 수입된 의서까지 모두 활용해서 편찬한 것으로, 병증(病症)을 중심으로 한 병문(病門)으로 나누지 않고 현대적 분류방법과 비슷하게 병증과 치료방법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내경편(內景篇)은 신형(身形)·정(精)·기(氣)·신(神)·혈(血)·몽(夢)·성음(聲音)·언어(言語)·진액(津液)·담음(痰飮)·오장육부(五臟六腑)·간(肝)·심(心)·비(脾)·폐(肺)·신장(腎臟)·담(膽)·위(胃)·소장(小腸)·대장(大腸)·방광(膀胱)·삼초부(三焦腑)·포(胞)·충(蟲)·대변(大便)·소변(小便)·수양(修養)·양노(養老) 등으로 주로 내과의 질병을 들었다.

외형편(外形篇)은 두(頭)·면(面)·안(眼)·이(耳)·비(鼻)·인후(咽喉)·두항(頭項)·배(背)·흉(胸)·유(乳)·복(腹)·제(臍)·요(腰)·협(脇)·피(皮)·육(肉)·맥(脉)·근(筋)·골(骨)·수(手)·족(足)·모발(毛髮)·전음(前陰)·후음(後陰) 등으로 주로 외과의 질병을 들었다.

잡병편(雜病篇)은 천지운기(天地運氣)·심병(審病)·변증(辨證)·진맥(診脈)·용약(用藥)·토(吐)·한(汗)·하(下)·풍(風)·한(寒)·서(暑)·습(濕)·조(燥)·화(火)·내상(內傷)·허로(虛勞)·곽란(霍亂)·구토(嘔吐)·해수(咳嗽)·적취(積聚)·부종(浮腫)·장만(脹滿)·소갈(消渴)·황달(黃疸)·해학(匐)·온역(瘟疫)·사숭(邪崇)·옹저(癰疽)·제창(諸瘡)·해독(解毒)·구급(救急)·괴질(怪疾)·잡방(雜方)·부인(婦人)·소아(小兒) 등이다.

병리와 진단방법으로 보아 내과와 외과에 속하지 않은 여러 가지 병증을 다루었다. 특히 부인과와 소아과가 있다.

탕액편(湯液篇)은 탕액서례(湯液序例)·수부(水部)·토부(土部)·곡부(穀部)·인부(人部)·금부(禽部)·수부(獸部)·어부(魚部)·충부(蟲部)·과부(果部)·채부(菜部)·초부(草部)·목부(木部)·옥부(玉部)·석부(石部)·금부(金部) 등이다. 주로 약물에 관한 지식을 열거했다.

침구편(鍼灸篇)은 침을 놓는 데 필요한 경혈(徑穴)을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는 한편, 침을 통해서 병을 고치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