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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시 정보

풍기 1 백년사

豊基!! 바로 보고 바로 알기


 

풍기1백년사편찬위원회 서 효 석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라는 책에서 사람은 아는 것만큼 느낀다고 했다. 그것은 많이 아는 사람이 많이 느끼고 많은 것을 감상하며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풍기 사람으로서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라고 나의 잔뼈를 굵힌 사랑하는 풍기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아마 뜻하지 않은 결과에 직면하면서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이나 사건에 대해서 ‘안다’거나 ‘알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자랑스럽지 못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고향을 바로 알고 바로 보고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이며 가슴 뿌듯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보다 내 고향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겉으론 기분이 좋으면서도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당황하게 되거나 심하면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나는 왜 몰랐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국가를 경영하는 큰일이든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이든 간에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얼마나 미쳤느냐? 로 평가할 수 있다. 주체가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해도 뜬구름 잡는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풍기 1백년사’ 를 책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됐지만 사실은 여러 해 전부터 물밑 작업은 이루어졌다고 봐야한다.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풍기발전협의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순 회장은 이 일을 위해서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김인순 회장이 미치게 된 것은 고향을 풍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고향 때문에 황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아는 만큼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만큼 풍기는 발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자주 만나는 내가 느낀 점이다.

김인순 회장은 지금도 조급하지 않고 여유를 찾으면서 이 일에 미치고, 작으나마 소중한 자료가 나올 때마다 자부심으로 웃곤 하는데 그의 깊은 속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팔자를 타고 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룹의 회장님이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팔자를 타고 나거나 신의 계시를 받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정신없는 사람, 지가 왜 그 일에 미치고 있어.’라든가 ‘나도 안하는데 지가 왜 그렇게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어.’ 또는 ‘그 사람 지금 뭘 염두에 두고 그 일을 하려는 거 아닌가?’ 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정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돕지는 못하더라도 쪽박을 깨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이고, 그는 이일을 하지 않아도 정신없이 시간에 쫓기는 사람임을 주위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외롭다고 하는가보다. 격려는 못해 줄망정,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권하진 못해 줄망정 시기하거나 방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금 국립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서는 사라지거나 감추어진 우리 고향 풍기의 자료를 검색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뛰고 있다. 당시의 일간 신문을 검색하고, 몇 안 되는 잡지와 논문을 살피는 일이야 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못 된다. 해방이전과 해방이후를 통틀어 100년. 6, 25 한국전쟁 이전의 자료를 찾기란 그야말로 어렵고 힘들고 왜 이일을 시작하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아득한 막힘으로 되고 있다. 우리는 ‘하늘의 별 따기’ 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바로 그것임을 곁에서 보면서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찾은 몇 가지 자료를 소개 하려고 한다. 몰라도 큰일 날 일이야 없겠지만 알면 더 신나는 일들이기에 더 큰 보람이라는 생각이다.

자료 1

待望의 中央線 鐵道
丹陽榮州 貫通 決定
鐵道局 實測에 着手
[榮州] 경북과 충북의 교통은 죽영(竹嶺)이 막히어서 불편이 크든바 지난 이십오일에 경북도에서는 관하 영주(榮州)에 중앙선철도실측(中央線鐵道實測)에 만흔후원을 통첩하엿스며 뒤를이어 철도국에서는 익강맹이(益岡猛二)기사외 열두명이 당지에 출장하야 부지의 실측과 교통의 편의를 조사중이라는데 오는십월십오일부터 동군풍기면에서 동부지의 실측에 착수하리라는데 이로서 중앙선은 단양(丹陽)영주를 관통하기로 결정된모양이라한다.
(조선일보, 1935, 10, .)


자료 2

中央線景氣바람에
豊基에地價暴騰
坪當一圓이 一躍十圓
[豊基] 뜻하지 못하든 경북풍기에 중앙선철마가 산을뚫고왕래하게되자 경북영주군풍기(慶北榮州郡豊基)는 토지의갑이 폭등되여 매평당칠십전내지 일원하든 것이 일약십원정도로 올라가게되여 일대충동을 일으키고잇다한다
(조선일보, 1936, 11, 23)


자료 3

榮豊間自働車開通
慶北自働車株式會社에셔는 同榮州郡邑內에셔 同郡豊基面까지 運轉의 許可를 受하야 去十日부터 開通中인대 賃金은 八十錢이라더라
(동아일보 1924년 4월 21)


 가능하다면 원본을 살리기 위해서 힘썼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고려하지 않았음.

우리는 늘 이야기 하곤 한다.
‘누가 뭐래도 풍기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이다. 나는 풍기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나만큼 풍기에 대해서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따지고 들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데서 어리둥절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인삼, 인조견, 사과’를 이야기 하는데 결국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이 이어지게 되어 듣는 사람이 혼돈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 의사를 잘 전달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뿐만 아니라, 제품이나 물건에 대해서도 새로운 호기심을 유발 시키게 된다는 것을 알면 모두가 고향 홍보 요원으로서 역할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 어디어디보다 더 질 좋은 인삼이 난다.’
질 좋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포닌이란 무엇이고 인체의 어떤 곳에 필요한 것인지도 설명되어야 하고, 그런 인삼을 어떻게 구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도 알도록 해 주어야 한다. ‘몸에 좋다’ 거나 ‘보신으로 사용한다.’ 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에 풍기 사람이라고 별난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풍기는 옛날부터 인조 공장이 많았다.’
풍기 경제가 그래도 영주를 앞서면서 풍기 사람들이 서울로 유학을 할 수 있었던 단초가 되었던 것이 직조 공장이었다. 지금은 색상과 디자인이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좋은 제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량 생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골목에 들어서면 자장가처럼 들리던 수직기 돌아가는 소리가 이제는 단지로 자리 잡으면서 영세업자들은 모두 물러서고 대규모 업자들이 새로운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풍기 사과는 서울 사람들이 더 알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태초의 풍기 사과는 대단한 파괴력으로 시장을 석권했다. 대구 사과의 유명세를 물리치고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천혜의 자연 조건이었다. 대구 사과는 열과에 약했지만 풍기 사과는 그것을 이겨냈고, 저장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에 대학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토질, 바람의 세기, 기온, 일사량은 물론 배수까지가 풍기 사과를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농기술의 발달로 사과 재배가 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화 되었고, 연간 생산량의 급속한 증가로 과수농가의 걱정을 크게 하고 있으나 새로운 길이 모색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풍기’ 하면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백산’을 이야기 한다.
소백산은 좋다. 그러나 왜 소백산이 좋은지, 소백산은 언제가 좋은지, 어떻게 보면 소백산이 아름다운지, 소백산의 어디를 봐야 바로 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을 한 눈에 선명하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곳, 풍기.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신비로운 곳인가는 말 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소백산을 충북에 빼앗기는 건 아닌지를 걱정하고, 소백산을 영주 소백산이라고 부를까, 풍기 소백산이라고 부를까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겉만 보고 속을 볼 줄 모르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할 때마다 ‘풍기 일 백년사’ 가 바르게 기록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 서 효 석 풍기초등 48회 현재 봉화 물야초등학교장으로 재직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