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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영주/영주의 모든것

[스크랩] 국보 282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282호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1380-1 흑석사 (국립대구박물관)

흑석사(黑石寺)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 몸체 안에서 많은 유물들을 발견되었다. 이 목조불상은 함께 발견된 기록들에 의해 조선 세조 4년(1458)에 법천사(法泉寺)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로 조성된 것임이 밝혀졌다.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육계와 팔, 배 주변에 나타난 옷의 주름에서 조선 초기의 특징이 보인다. 그러나 법천사(法泉寺)란 사찰명은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등 여러 지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어 정확히 어느 곳에 있었던 절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불상의 몸체 안에서는 불상의 조성을 알리는 글과 시주자 명단이 들어있는 『불상조성권고문』을 비롯하여 불경 내용을 적은 『불조삼경합부』와 불교부적 등 7종에 걸친 14점이 나왔다. 또한 1824년 유점사에서 간행된 『조상경』에 나오는 불상 몸체 안에 넣는 부장물의 내용과 일치하는 38종의 다양한 직물들과 5향(香), 5곡(穀), 유리·호박·진주 등 칠보류가 함께 발견되었다.

※명칭변경;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병 복장유물 →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불상 국보282-1호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1380-1 흑석사

흑석사(黑石寺)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 때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木造阿彌陀佛像) 몸체 안에서 서적류와 직물을 비롯하여 5곡, 5향, 보석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 불상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좌상으로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이 솟아 있다. 얼굴은 계란형으로 갸름하고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아담하다. 무늬가 없는 두꺼운 옷을 양 어깨에 걸치고 아미타여래의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머리 모양과 왼쪽 팔, 배 위로 나타난 옷의 주름에서 조선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조성기(造成記)와 대공덕경(大功德經)에 이 불상이 법천사(法泉寺)의 당주(堂主)로 천순이년(天順二年)인 1458년에 조성된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의 본존불(本尊佛)이라는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서 조선초기(朝鮮初期) 조각사연구(彫刻史硏究)에 귀중한 자료로 주목된다.

 

전적 국보282-2호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1380-1 흑석사 (국립대구박물관)

흑석사(黑石寺)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 때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 몸체 안에서 서적류와 직물을 비롯하여 5곡, 5향, 보석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 서적류는 총 7종에 걸쳐 14점이 발견되었다. 『아미타삼존복장기』는 두루마리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명주와 백지를 길게 이어 붙혀 그 위에 187행에 걸쳐 아미타불의 조성 시기와 참여인물, 시주자들을 나열한 것이다. 『불상조성권선문』은 첩(帖)으로 만든 것으로 표지는 연두색이고, ‘대공덕소’란 표제가 붙어 있고, 아미타불상을 조성하기 위해 알리는 글과 시주자들의 이름들을 적어 두었다. 『불설대부모은중경목판본』의 표지에는 녹색 명주에 검은 글씨로 쓴 제목이 있다. 부모에게 보은을 설하는 ‘부모은중경’과 죄를 멸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도리를 설한 ‘장수멸죄경’의 내용이 들어있다. 『백지묵서불조삼경합부』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간행된 것으로, 표지에는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로 그린 꽃과 제목이 있다. 이것은 최초로 한역한 ‘사십이장경’과 부처님의 마지막 설교라는 ‘불유교경’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금니묘법연화경』은 부처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낱장으로 되어 있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은 은가루를 아교에 갠 은니로 ‘법화경’의 내용을 적은 것이다. 『부적』은 6장의 낱장으로 되어 있는데 부처님이 말씀을 적은 『진언집』에서 따온 불교 부적이다. 복장기는 조선 세조4년(1458)에 목조아미타불 삼존상(三尊像)을 조성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성철(性哲), 성수(性修)의 화주(化主)로 태종의 후궁(後宮)인 의빈(懿嬪) 권씨(權氏), 명빈(明嬪) 김씨(金氏)와 효령대군(孝寧大君)등 왕실과 종친(宗親)들의 시주(施主)와 이소세(李小世), 이화(李華)등 275人의 시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을 조성하는데 화원(畵員)에 이중선(李重善), 이흥손(李興孫), 김박(金朴)에 이송산(李松山), 각수(刻手)에 황소봉(黃小奉), 소목(小木)에 양일봉(梁日峯) 등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직물류 국보282-3호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1380-1 흑석사 (국립대구박물관)

흑석사(黑石寺)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 때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木造阿彌陀佛像) 몸체 안에서 서적류와 직물을 비롯하여 5곡, 5향, 보석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 직물류에는 불상의 몸체에 넣었던 동·서·남·북과 중앙을 뜻하는 5색의 비단을 비롯하여, 사리함과 향을 쌌던 보자기류 겉은 섬세하고 곱지만 안쪽은 빳빳한 사리보, 발원문이 적혀있는 전혀 가공되지 않은 청색의 생사, 시주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비단천 등 각기 다른 직물과 문양, 색을 지닌 것들로 총 38점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세조 때의 것으로, 조선시대에 양잠을 중요시 여겨 세조 1년(1455)에 동궁에 친잠을 설치하여 양잠을 장려하고, 염료별로 전문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기타 복장물 오향, 칠약, 오곡, 칠보류, 사리함 국보282-4호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1380-1 흑석사 (국립대구박물관)

흑석사(黑石寺)는 삼국시대 석조마애여래상과 통일신라 때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이 있는 절로 늦어도 통일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1945년 다시 중창되었는데, 1990년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불상(木造阿彌陀佛像) 몸체 안에서 서적류와 직물을 비롯하여 5곡, 5향, 보석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목조아미타여래 몸체 안에서 나온 여러 유물들은 1824년 유림사에서 간행된 『조상경』의 내용 중에 나오는 복장 유물을 넣는 취지와 물품들과 일치하고 있다. 그 중 서적류와 직물류를 제외하고 동·서·남·북과 중앙을 뜻하는 5가지 곡식과 5가지 향기 그리고 일곱가지 약과 유리, 호박, 진주 등의 일곱가지 보석, 사리함이 있었는데 그 중 보석들은 사리 대용으로 넣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 사랑
글쓴이 : 나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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