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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관련

문화유적.... 상원사 동종 (국보 36호)

 

상원사 동종문화유적

 

- 상원사 동종

대산 비로봉 아래에 있는 상원사에는 본사인 월정사보다 더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상원사 동종이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는 이 동종은 문수전 앞마당 한쪽에 감옥처럼 지어진 좁은 보호각에 갇혀 답답해 보였으나, 지금은 좀 더 넓은 종각으로 옮겨져 보기가 한결 좋습니다.

상원사 동종에 새겨진 비천상을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날아오를 듯 경쾌하여 들고 있는 악기인 공후(空喉)와 생(笙)에서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가 지금도 들릴 듯합니다. 실제로도 상원사 동종의 종소리는 매우 맑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최순우 선생의 글에서도 그 소리를 "어찌 생각하면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간절한 마음 같기도 한 너무나 고운 소리였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종을 보호하려고 타종을 금했기 때문입니다.

이 동종은 그 모습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입니다. 용뉴 좌우에 음각된 종명(鐘銘)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선 때입니다. 크기는 높이가 167cm, 지름이 91cm입니다.

 


상원사 동종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비천상이 새겨진 부분입니다.

비천상(飛天像)은
천인(天人)과 천중(天衆)이 나는 형상을 묘사한 것으로, 예로부터 회화나 조각에 표현되어 장엄함을 나타내었습니다. 비천이 연주하는 공후 등의 악기는 우리 고유의 악기가 아니라 서역 계통의 악기입니다. 이런 악기의 등장은 비천상의 표현 형식이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내려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에 견줄 수 있는 것으로는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은 공양을 드리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상원사 동종의 비천상은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奏樂飛天,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을 날고 있는 천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천상이 종신(鐘身)뿐만 아니라 종의 상대(上帶)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피리와 쟁(箏)을 연주하고 있는 작은 비천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대(下帶)에도 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 각각 취악기, 피리, 장고, 비파 등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곽(乳廓)의 띠 아랫부분과 좌우에도 생과 요고(腰鼓)를 연주하는 비천상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 비천상

 

 
상원사 동종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우나 용뉴의 좌우 천판에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開元十三年乙丑三月
八日鐘成記之都合鍮
三千三百鋌▨▨普衆
都唯乃孝▨直歲道直
衆僧忠七沖安貞應
旦越有休大舍乇夫人
休道里德香舍上安舍
照南乇(?)匠仕▨大舍

개원 13년 을축(725년) 3월 8일에 종이 완성되어서 이를 기록한다. 들어간 놋쇠가 도합 3,300정이다. (사주?)는 보중이며, 도유나는 효▨이며 직세는 도직이다. 뭇 승려는 충칠·충안·정응이다. 단월은 유휴대사댁 부인인 휴도리와 (이하 미상)

명문의 내용에 "개원 13년 을축 3월8일에 종이 완성되어서 이를 기록한다.(開元十三年 乙丑 三月 八日 鐘成記之)"라고 적혀 있어 이 종을 만든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종을 제조하는 데 들어간 놋쇠가 모두 3300정(鋌)이었고, 제작에 참여한 승려와 감독자, 관직 등도 알 수 있습니다.

 

- 동종에 새겨진 명문

 


종의 맨 위에는 유난히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을 가진 용이 용뉴(龍鈕)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상원사 동종은 원래 안동의 문루종(門樓鐘)이었으나,
예종 1년(1469년)에 상원사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경북 안동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안동 누문의 옛 종을 상원사로 옮겼다는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상원사 동종을 살펴보다 보면 36개의 유두(乳頭) 가운데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종의 이전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재미난 이야기가 전합니다.


세조가 자신의 원찰인 상원사에 봉안할 종을 구려고 전국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경북 안동의 문루(門樓)에 걸려 있는 종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종을 안동에서 상원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죽령에 이르렀을 때 3천379근이나 나가는 종이 길에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종의 유두 하나를 떼어서 원래 있던 안동으로 보냈더니 다시 움직였다고 합니다.

 

- 용뉴와 음관

 


종 몸체의 상대와 하대, 그리고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문양으로 테두리를 하였고, 그 안쪽에
덩굴무늬를 새긴 다음 드문드문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습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고, 그 밑으로 마주 보는 두 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습니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가 있습니다. 이 당좌는 가운데에 여덟 엽의 연판(
蓮瓣)을 장식한 다음 그 바깥쪽으로 다시 구슬무늬과 덩굴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상원사 동종이 지금까지 무사한 데는 27년 동안 상원사에서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수행 정진했던 방한암 스님 덕이 큽니다.

한국전쟁이 치열할 즈음 산속의 절이 적의 거점이 된다고 하여 소각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월정사를 불태우고 상원사에 올라오니 늙은 스님이 혼자서 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절에 불을 놓으려고 하니 비키라고 하자, 스님은 "그렇다면 이 법당과 함께 불에 타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겠노라" 하며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굳은 의지에 감화를 받은 군인들이 한 걸음 물러서기는 하였지만 상부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어서 절의 문짝만 떼어 불살라서 절이 타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상원사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 당좌

 

 

춮처 : http://blog.daum.net/hks3188  꿈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