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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유/마음의 글

더불어 사는 세상


 

지난해 늦가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 공원을 지날 때

등 뒤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 저기요..."

뒤돌아보니 덥수룩한 머리,

허름한 옷을 입은 한 아저씨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경계심 가득한 내 눈빛 때문인지 그는 머뭇거리다가

3천 원만 줄 수 있나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오갈 데 없는 할아버지가 며칠 굶어서 밥을 한 끼 사 드리고 싶은데,

그도 노숙자 신세라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이 아닐까 싶었지만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지갑을 열었다.

하필이면 천원짜리 두 장뿐,

어쩔 수 없이 5천 원을 내밀었다.

그런데 돌아서서 걷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도 굶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가던 길을 되돌아 공원으로 향했다.

그가 노인을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 뭔가를 주문하고는

따뜻한 웃음을 띠며 노인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문득 그가 돈이 부족해서 1인분의 식사만 주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휴대 전화를 꺼내 식당에 전화했다.

잠시 식당 밖으로 나와 달라는 내 부탁에

주인은 성가신 듯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왔다.

 

역시 그는 된장찌개 1인분만 주문했다는 것이다.

나는 주인에게 음식 값을 건네며

그들에게 2인분의 음식을 차려 달라고 부탁하고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언제부터인가 내 발만 내려다 보며 걸어왔던 움츠린 마음을

누군가가 한 대 툭 치며 말하는 것 같았다.

 

삶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고.

 

 

- 좋은생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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