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문화재 지정공고
경상북도 고시 제2012-138호
도지정문화재 지정고시(안)
경상북도문화재보호조례 제15조, 제22조의 규정에 의거 아래
문화유산을 도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로 지정하고, 동 조례
제17조의 규정에 의거 도보에 고시합니다.
2012. 5. 14.
경 상 북 도 지 사
□ 문화재 지정내용
일련 번호 |
지정 종별 |
지정 번호 |
문화재명 |
수량 |
소유자 |
소재지 |
비고 |
1 |
유 형 문화재 |
435 |
수운잡방 (需雲雜方) |
1冊 |
김원동 |
안동시 용상동 1189-6 (한국국학진흥원 위탁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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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유 형 문화재 |
436 |
영주 비로사 아미타후불탱화 (榮州 毘盧寺 阿彌陀後佛幀畵) |
1幀 |
비로사 |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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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유 형 문화재 |
437 |
상주 도림사 소장 청동유물 일괄 (尙州 道林寺 所藏 靑銅遺物 一括) |
31點 |
도림사 |
상주시 서곡동 334-2 (상주박물관 위탁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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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유 형 문화재 |
438 |
문경 김용사 양진암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일괄 (聞慶 金龍寺 養眞庵 木造觀世音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一括) |
1軀, 2枚 |
김용사 양진암 |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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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유 형 문화재 |
439 |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慶山 環城寺 大雄殿 須彌壇) |
1基 |
환성사 |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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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유 형 문화재 |
440 |
경산 환성사 방형석조 (慶山 環城寺 方形石槽) |
1基 |
환성사 |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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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유 형 문화재 |
441 |
울진 대풍헌 현판 일괄 (蔚珍 待風軒 懸板 一括) |
12點 |
구산동회 |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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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문화재 자 료 |
592 |
경산 환성사 주형석조 (慶山 環城寺 舟形石槽) |
1基 |
환성사 |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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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사유
◦ 수운잡방(需雲雜方)
안동 광산김씨 설월당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은 조선전기 안동 일대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漢文 筆寫本 조리서로서 총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17장)은 행서로 쓰여 있으며 ‘濯淸公遺墨’이라 기재되어 있고, 하편(7장)은 초서로 작성되어 있으며 ‘溪巖先祖遺墨’이라 적혀 있다. 탁청공 김유(濯淸公 金綏)에 의해 집필이 시작된 후, 그의 손자인 계암 김령(溪巖 金坽)에 의해 뒷부분이 보완되어 『需雲雜方』의 형태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편에 86가지, 하편에 35가지 총 121가지의 음식조리와 가공법이 기록되어 있다.
『음식디미방』보다 연대가 앞서며, 재료의 사용에서 가공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안동을 중심으로 한 조선전기 양반가의 식생활 모습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하지만, 24장으로 구성된 간략한 책으로서 序文과 跋文이 없고 정확한 저술동기와 연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되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 영주 비로사 아미타후불탱화(榮州 毘盧寺 阿彌陀後佛幀畵)
비로사의 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탱화는 結跏趺坐한 아미타불 좌우에 侍立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阿彌陀三尊像이 화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이외 상·하단 여백에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조그맣게 배치되어 있다. 화면이 다소 어둡고 부분적인 훼손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파스텔 톤의 화사한 채색, 法衣와 天衣 등에 시문된 도안화된 화사한 초화문양, 유려한 필치, 특히 지장보살의 옷 끝자락 등에 보이는 풍부한 金泥의 연속 화문 등이 돋보인다.
이 탱화는 畵記를 통해 1832년(道光 12)이라는 제작연대와 畵員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아미타후불탱화로서, 아미타삼존상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가 묘사된 특징적인 도상이며 이와 함께 화사한 채색, 장식적인 문양 등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 상주 도림사 소장 청동유물 일괄(尙州 道林寺 所藏 靑銅遺物 一括)
이 유물은 상주 도림사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바라 2점, 청동향완 2점, 청동광명대 1점, 청동경쇠 2점, 청동접시 23점, 청동국자 1점 등 총 31점의 청동유물이다. 이들 유물의 성격은 대부분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던 의식구이다.
청동향완은 청주 사뇌사에서 출토된 태화 5년銘 향완과 유사하고, 청동접시 또한 사뇌사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器種인 것으로 보아 이들 유물은 고려시대(13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점의 청동바라와 1점의 청동향완에는 銘文이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소장 사찰명과 제작한 匠人을 알 수 있는 등 고려시대 금속공예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따라서 도림사 소장 청동유물은 고려시대 불교공예와 불교의식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므로 一括(31점)하여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아울러 일부 청동유물은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시급히 보존처리 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 문경 김용사 양진암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일괄
(聞慶 金龍寺 養眞庵 木造觀世音菩薩坐像 및 腹藏遺物 一括)
이 보살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왼손에는 정병을 든 목조관세음보살좌상이다. 전체 높이 37㎝의 중형 像으로 큰 頭部에 비해 어깨가 좁아 조선후기 불상에서 주로 보이는 신체 형태와 비례를 보이고 있다. 腹藏에서 발견된 造成記에 의하면, 1658년(順治 15)에 조각승 勝一스님이 수화승으로 참여하였으며 운달산 운수암에 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복장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願文에 의하면, 1843년(道光 23)에 金魚 仁侃, 釆寬, 應尙에 의해 改金되었다고 한다.
이 보살상은 腹藏物에서 발견된 발원문 등을 통해 제작자 및 제작연대, 그리고 道光 23년에 개금된 사실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크므로 복장유물(2枚)과 함께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慶山 環城寺 大雄殿 須彌壇)
환성사의 대웅전에 있는 이 수미단은 정면 12칸, 측면 4칸의 가구수법으로 조성된 3단의 長方形 수미단이다. 후불벽 뒷면의 출입구를 통해 수미단 내부로 진입이 가능한 구조이며 내부의 일부 부재에는 墨書가 남아 있다.
창호의 결구수법을 활용한 독특한 의장과 조각장식이 돋보이는 秀作으로서 청판의 백색·청색 대비, 족대의 적색·황색 대비를 바탕으로 내부 琪花瑞草와 어우러진 瑞獸들의 생동감 있는 動勢를 통해 조선시대 민화적 요소를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릉빈가, 나찰 등은 조선시대 불교미술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도상으로 이를 통해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도상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수미단의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환성사 대웅전이 1635년에 중건되었고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과 조각장식에서 흡사한 점으로 미루어 1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 장식판의 문양과 조각수법은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판단되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 경산 환성사 방형석조(慶山 環城寺 方形石槽)
환성사 대웅전 동편 비탈에 위치한 162×250㎝ 규모의 장방형의 이 석조는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주변이 땅에 묻혀있어 외곽 형태와 규모는 알 수 없으며, 노출된 외벽의 두께는 약 21㎝ 전후이다. 내부 깊이는 38㎝이며 바닥의 내곽이 상면에 비해 약 10㎝ 가량 줄어들어 벽체는 상부로 갈수록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바닥의 동남쪽 바닥 모서리에 직경 7㎝의 배수구가 뚫려 있고, 그 상단에 물이 가득 찼을 때 밖으로 배출되도록 직경 6㎝의 반원형 출수구가 마련되어 있다.
이 석조는 그 형태나 제작방식으로 미루어 환성사의 창건시기인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석조 중에는 경주 보문리사지 석조와 불국사의 석조가 문화재(보물)로 지정된 사례가 있으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 울진 대풍헌 현판 일괄(蔚珍 待風軒 懸板 一括)
대풍헌은 조선시대에 울릉도·독도를 관할하기 위해 파견된 수토사들이 순풍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곳으로, 이번에 문화재로 신청된 유물은 이 대풍헌의 안팎에 걸려있는 현판 가운데 1910년 이전에 만들어진 12점이다. 목록은「箕城龜山洞舍」1점(1851년),「待風軒」1점(1851년),「邱山洞舍重修記」1점(1851년),「永世不忘之板」6점(1870∼1878년),「邱山洞舍記」1점(1888년),「洞稧完文」1점(1904년),「重修記」1점(1906년)이다.
이 유물들은 조선 정부가 19세기에도 지속하여 울릉도·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울릉도·독도의 수토와 관련된 사료를 찾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이 현판들이 갖는 자료적인 가치와 독도문제의 중요성 등을 감안하여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 경산 환성사 주형석조(慶山 環城寺 舟形石槽)
환성사 수월관 서편에 위치한 260×280㎝ 규모의 타원형의 이 석조는 자연암석 상면을 치석하여 조성하였다. 수곽 상면이 긴 타원형이며 아래쪽으로는 둥글게 감곡되어 선형을 이루고 있다. 석조의 깊이는 45㎝이며 바닥면에는 불순물을 거를 수 있는 3조의 물빠짐골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국내에서 확인된 유일한 사례이다. 수곽의 기본 형태는 조선시대 사찰에서 공납용 종이제작에 사용되었던 목조 수조의 형태와 상통하여 조선후기에 製紙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석조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아울러 이 석조는 독특한 구조와 조형성이 뛰어나므로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