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어디까지 가봤니? - 경주 석굴암
경주 석굴암
대한민국 국민에게 경주, 석굴암은 우리 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자랑거리이고 더불어 가장 익숙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경주로 수학여행 한 번 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래서 이제 특별한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시시한 여행지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교과서에서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자주 소개되는 신라 천년문화의 백미.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되어 우리나라만의 문화재가 아닌 전 세계인들로부터 주목받고 인정받는 우리 민족문화의 자부심. 온 국민의 자랑거리인 만큼 석굴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새롭게 알 것이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과연, 누군가 석굴암의 아름다움에 대해 묻는다면? 신라인의 예술혼이 담긴 걸작이자 종교와 예술, 그리고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룬 우수한 문화유산이라는 교과서 속의 평가까지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의 설명을 덧붙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유네스코’라는 권위를 떼어내고 석굴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가장 잘 모르고 있을, 석굴암의 낯선 감동을 찾아 떠나보자!
유리벽 속에 갇힌 석굴암, 그리고 십일면관음보살상(十一面觀音菩薩像).
석굴암을 처음 찾은 관광객 대부분이 석굴암 전실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벽으로 인해 실망감을 토로한다. 책이나 tv에서 보는 것만 못한 갇혀있는 석굴암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할 만한 여력은 없어 보인다. ‘보호’라는 미명 아래 박재되어 버린 석굴암이 아쉽기만 할 뿐이다. 구조상 전방후원(前方後圓)을 취하고 있는 석굴암은,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전실이 전부가 아니라 본존불 뒤로도 많은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유리벽으로 갇힌 채 본존불 뒤로 펼쳐진 석굴암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문화재의 보호는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의무이지만 석굴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한 고민도 했으면 한다.
영화 ‘무방비 도시’는 기업형 소매치기 사건과 그 사건을 쫓는 광역수사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특히 화제가 되었던 것은, 소매치기 조직의 리더 ‘백장미’를 연기한 손예진의 노출 못지않게 주목을 끌었던 허리 문신이었다. 바로 천수천안관음보살(千手千眼觀音菩薩).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으로 지갑을 훔치려는 문신이라며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영화 속에서 꽤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석굴암 본존불 뒤로 감춰진 곳에 아름다움의 빛을 숨기고 있는 조각이 바로 십일면관음보살상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천수천안관음보살이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석굴암의 십일면관음보살은 이름 그대로 11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관음보살이다. 천수천안관음보살은 천개의 손과 눈으로, 그리고 십일면관음보살은 11개의 얼굴로 각각 사방 중생의 고통을 두루 살피고 돕는다는 점에서 같은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음보살의 자비를 적극적으로 극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십일면관음보살상이 갖는 11개 얼굴의 의미는 무엇일까?
십일면관음보살이란 이름 그대로 11개의 작은 얼굴을 가진 관음보살을 말한다. 십일면관음은 죄를 소멸하고 복을 주며 병을 낫게 해주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11개의 작은 얼굴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각각의 소면은 서로 다른 얼굴표정을 짓고 있다. 먼저 앞면의 3면은 자애로운 표정이고 좌측의 3면은 성난 모습이며, 우측 3면은 흰 이를 드러내고 미소 짓는 모습이다. 정상의 1면은 부처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뒤통수의 1면은 큰 소리를 내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각각의 얼굴에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중생구제의 깊은 염원과 상징을 담고 있다.
본존불에 가려져 유리벽을 통해서도 볼 수 없는 십일면관음보살이지만, 이 조각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석굴암에서 느끼는 감동이 배가 되는 것은 십일면관음보살이 갖는 성격때문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 십일면관음보살은 11개의 얼굴로 사방을 두루 살펴 단 한 명의 중생도 빼놓지 않고 고통과 번뇌 속에서 구제하려는 적극적인 자비의 현신이다. 종교와 예술의 잘 어울려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 때문이지 않을까? 종교적인 믿음과 상징으로 존재하는 십일면관음보살을 조각으로써 환생시킨 것. 신라인들은 석굴암의 조형으로 그들의 견고한 믿음을 더해갔으며 종교적인 심미안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11개의 소면을 머리 위에 모자처럼 얹고 있음에도 그 형상이 괴기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애로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적극적인 자비때문이다. 불교조각의 정점에 닿았던 8세기 작품이라서 조각수법 자체가 세련된 점도 있지만, 신라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자비로운 관음보살을 상상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석굴암 조형 속에 신라인들의 믿음과 염원이 관음보살상의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감동으로 전해져오는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이던 시절, 선배들을 따라 나섰던 경주 답사는 아직까지 내 생애 최고의 여행으로 기억되고 있다. 책이나 논문에서나 보던 문화재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부푼 가슴으로 다가갔던 경주였고, 선배들이 해주는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더 많이 배우려고 욕심을 부렸었다. 그런데 석굴암에서 한 선배가 뜬
금없는 질문을 했었다. 네가 보기에도 정말 석굴암이 아름다운 것 같냐는, 아주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그 질문이 아직까지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질문이기도 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름답고 훌륭한 것 같냐고 덧붙여 묻는 질문에, 나는 그저 책에서 봤던 설명을 외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석굴암의 과학성은 이미 널리 입증된 것이지만, 석굴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그런 과학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석굴암의 ‘어디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내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참을 유리벽 앞에 서서 구석구석을 살펴보고서야 깨달았다. 문화재라는 것이, 꼭 국보 몇 호이거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든 아니든 그건 정작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문화재를 보고 느껴지는 감동이고, 그런 감동에서 시작되는 소중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 석굴암은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석굴암에 담긴 신라인의 예술혼에 함께 숨쉬고 자신만의 감동을 찾아보자. 석굴암만이 아니다. 널리 잘 알려져 있어서 익숙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낯선 문화재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았으면 한다.
▲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설형아 기자